[왜/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홀린 LG 트롬 세탁기

2015년까지 8년 연속 세계 세탁기 점유율 1위…프리미엄 시장 맹주
"'고졸 신화' 조성진 부회장, DD 시스템으로 세탁기 역사 바꾸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신화를 일궈낸 사람과 기업들을 보면 그 노하우와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최고라는 타이틀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최고가 된 이들은 숱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세계파이낸스는 성공한 기업 또는 인물들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은 무엇인지, 그들만의 노하우와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왜/어떻게] 시리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LG전자는 초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LG 시그니처`의 글로벌 판매에 맞춰 세계 주요 건물과 연계한 독창적인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진은 `LG 시그니처 세탁기`와 슈투트가르트 `국립음악대학`. 사진=LG전자


한국 이전의 가전왕국은 일본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이 세계 가전시장을 영원히 이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과 LG가 끈기와 기술력으로 일본을 밀어내고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다. 한국은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4대 가전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이중 LG전자는 2002년 이후부터 드럼세탁기에 인버터 다이렉트 드라이브(DD)모터 기술을 적용하면서 2007년에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4년 만에 월풀·제너럴일렉트릭(GE) 등 현지 선두기업들을 제치고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어 2008년 8%의 점유율로 처음 세계 1위에 오른 뒤 2015년까지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 업체의 저가 물량 공세, 이제는 추격자가 된 일본과 유럽 가전의 재건 움직임에 점유율 수성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업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LG전자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가전 시대를 열면서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의 맹주로 올라서게 된다.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패권을 놓치 않으려는 LG전자의 차별화 전략을 알아본다.

◇ 세탁기 하나로 최고경영자(CEO) 오른 조성진 부회장

LG전자 대표이사인 조성진 부회장은 '세탁기맨'으로 불린다. 고졸 출신으로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한 이후 40여 년간 가전사업 외길을 걸은 명실공히 최고 기술 장인(匠人)이다.

조 부회장이 금성사에 입사한 1976년은 국내 세탁기 보급률은 1%도 안됐던 시절이다. 더욱이 국내에서 생산하는 세탁기는 100% 일본기술에 의지했다. 기술력이 없으니 금성사에서 세탁기 부서는 모든 이들의 기피대상이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세탁기에서 인생의 승부를 내고 싶다"면서 비전이 보이지 않았던 세탁기 부서에 자원했다.

입사 초창기에는 일본 기술을 도입해 제품을 출시하는데 집중했다. 일본의 설계 기술을 베끼는게 주 업무였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기술계약을 체결한 것도 아니어서 체계적으로 배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일본인에게 술을 사주면서 친분을 쌓고 몰래 라인을 구경하면서 눈동냥, 귀동냥으로 일본 세탁기 기술을 배워 나갔다.

당시 세탁기 구조는 세탁조와 모터를 벨트로 연결해 클러치로 조정하는 일본식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소음이 크고, 결함도 많았다. '일본 기술이 최고는 아니다!' 조 부회장은 확신이 들었다.

1990대 초 조 부회장은 세계에 없는 기술을 만들기로 한다. 1994년부터 그와 개발팀은 공장 2층에 숙소를 마련, 합숙에 들어간다.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조 부회장은 입사 20년 만에 세탁기설계실장에 올랐고, 1995년부터는 유럽에서만 만들던 드럼세탁기를 연구했다. 이어 1999년 세탁조에 직접 연결된 모터로 작동하는 다이렉트 드라이브(DD) 시스템 개발에 성공한다.

DD 시스템은 LG전자 세탁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진동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데다 원가도 기존대비 60% 감소했다. 이 시스템으로 미국에서 특허 10건을 획득했다. 미국와 유럽에서 기술제휴를 요청해올 정도였다. DD 시스템은 나중에 드럼세탁기로 연결되면서 LG전자 세탁기를 세계 1위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된다.

LG전자는 일본 기술에 의지하던 전자동 세탁기를 100% 국산화에 성공시켰다. 2002년에는 대용량 세탁기인 트롬을 개발해 돌풍을 일으켰고, 세계 드럼 세탁기 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LG전자가 차지하게 된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 내부 양쪽에서 스팀을 내보내는 트롬 세탁기를 만들어냈다. 세탁기와 관련한 국내외 특허 출연건수는 4000건이 넘는다. 트롬 세탁기 시리즈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2002년부터 드럼세탁기 시장 1위, 전세계에서도 1위에 올라 선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 인터넷 가전 등 프리미엄 전략 전환…결과는 '역대 최고 실적'

올 1분기 LG전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와 'LG 시그니처' 등 프리미엄 가전 등에 힘입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가전에서만 2009년 2분기 이후 최대인 1조107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은 12.5%를 기록, 프리미엄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LG전자의 프리미엄은 조금 다르다.  LG전자는 '프리미엄 중의 최고가 되겠다'면서 '초(超)프리미엄' 전략을 펼치고 있다.

LG전자가 초프리미엄 마케팅을 시작한 2년전까지 1000만원이 넘는 TV, 400만원대 세탁기가 얼마나 팔릴까 의심이 짙었다. 그러나 LG전자는 양보다 질을 선택했고 결국 수익성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프리미엄 브랜드가 안착한 게 된 배경은 '고급화된 디자인'이다. 시그니처는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을 만들자는 사명 아래 품질을 잘 드러낼 수 있고,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구현해냈다. 이중 세탁기는 손잡이, 버튼, 화면 등 복잡한 요소들을 최소화하면서 깔끔하면서도 견고함을 살렸고, 곡선 모형의 유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최근엔 가전에 AI, 로봇,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 초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노경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프리미엄 가전 제품에 대한 인지도 상승과 성공적인 신제품 출시로 LG 브랜드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면서 "IoT가전과 인공지능가전 등 새로운 가전 출시를 통해 가전업계에서 높은 경쟁우위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출시한 12㎏ 용량의 트롬 드럼세탁기와 2㎏ 용량의 미니워시를 결합한 `슬림`트롬 트윈워시 신제품. 사진=LG전자


◇ '세탁기 전쟁' 美·中에 치이고, 日·유럽 추격…점유율 수성 고민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가전 왕국을 따라 잡으려는 추격자들도 게으르지 않았다.

한국 가전에 패권을 내준 일본 기업들은 전열을 정비해 옛 영토 회복에 나섰고 격차가 커 보였던 중국 기업들도 물량,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유럽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고 미국은 매년 소송으로 한국 기업들을 괴롭히고 있다.

전쟁터와 같은 세탁기 시장에서 LG전자의 아성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LG전자의 세계 세탁기 시장 점유율(판매량 기준)은 지난 2012년 7.6%에서 작년 8.3%로 0.7% 포인트 늘었지만 순위는 3위에서 4위로 한단계 내려왔다.

1위는 중국의 하이얼이다.  하이얼의 세계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17.4%, 메이얼도 10.2%에 달한다. 미국의 최대 사전업체 월풀도 점유율 15.9%로 하이얼과 1, 2위를 다투고 있다.

유럽 시장엔 100년 역사를 가진 빌트인 가전 업체들이 즐비하다. 보시, 일렉트로룩스, 밀레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업체들에 고전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로 LG전자를 괴롭히고 있다. 미국 최대 가전업체 월풀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 덤핑으로 수백만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미 정부도 한국산 세탁기 등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외국산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서 TRQ(저율관세할당) 기준을 120만대로 설정했다. 첫해 120만대 이하 물량에 대해선 20%,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그 다음 해인 2년 차의 경우, 120만대 미만 물량에는 18%, 120만대 초과 물량에는 45%를 부과하고 3년 차에는 각각 16%와 40%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여전히 미국 시장에 국내 가전업체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 2위를 달리고 있다. 올 1분기 미국 브랜드별 TV·세탁기 등 생활가전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은 삼성전자가 19.6%, LG전자가 16.5%에 달한다.

그러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다툼의 불똥이 어디로, 얼마나 튈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일본이 한국에 가전 왕국을 빼앗겼듯이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가전 굴기를 막아내야 하는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의 게임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장영일 기자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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