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반도체 랠리, 아직 ‘2회 말’이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

 주식 시장에는 항상 두 가지 형태의 공포가 공존한다. 하나는 폭락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급등에 따른 이른바 ‘FOMO’다. 코스피가 박스권을 뚫고 2500에서 5000으로 수직 상승한 지금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환호도 있고, FOMO도 있지만 “일장춘몽이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의외로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는 이익이 정점일 때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과거 반도체 사이클의 고정관념이 개인투자자들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새로운 사이클은 이미 시작되었다. 투자자들은 과거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최근 대만 TSMC의 실적발표가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 TSMC의 실적과 미래 가이던스는 현재의 인공지능(AI) 혁명이 거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웨이저자 TSMC CEO는 “AI는 리얼(Real)이며, 고객들은 AI가 실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2026년 설비투자 전망을 전년 대비 35%나 늘린 520억~560억 달러로 제시했다.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기업이 미래를 위해 이토록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다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AI 칩 주문이 여전히 공급을 압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지금 ‘AI 1등’ 이라는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건 인프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인프라 전쟁으로 인한 낙수효과는 고스란히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AI 연산의 속도를 결정짓는 병목 구간을 해결할 열쇠가 다름 아닌 메모리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의 이목은 HBM(고대역폭 메모리)에 쏠려 있지만, 진짜 거대한 파도는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밀려오고 있다. AI가 단순 학습 단계를 지나 추론(Inference) 단계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막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임시 저장하고 처리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것이다. 비싼 HBM만으로는 이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레거시(범용) D램과 낸드 플래시 수요가 동반 급증하는 구조적 성장이 본격화되고 있다.

 

 수요는 이처럼 넓어지고 있는 데 반해 공급의 문은 좁아지고 있다. 이것이 과거와 다른, 우리가 일장춘몽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하락 사이클의 고통 속에서 생산능력을 보수적으로 관리해 왔다. 현재 가동 가능한 라인마저 HBM 생산에 집중하느라 범용 웨이퍼 투입량은 오히려 감소해버렸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할 물건이 없는 완벽한 ‘공급자 우위’가 형성된 것이다. 가격결정권은 이제 구매자가 아닌 공급자, 즉 한국 기업들에 넘어왔다. 이것이 삼성전자가 2025년 43조 원에서 2026년 120조 원으로 이익이 ‘퀀텀 점프’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이다.

 

 과거 2018년의 하락장은 무리한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이 만든 비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히 절제된 공급과 폭발하는 수요가 만나는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점이다. 블룸버그의 신흥시장 펀드매니저인 디부야 마투르는 “시장은 AI가 얼마나 메모리 집약적인 산업인지 여전히 과소평가하고 있다. AI 열풍으로 향후 10년간 호황을 누릴 것이다”라면서 “AI 랠리는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다”라고 말했다. AI 10년 사이클에서 이제 겨우 2년 차, 즉 야구로 비유하면 9회 중 이제 막 2회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단기간 급등했지만 이제 겨우 2회인 것이다. 아직 점수를 낼 기회는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

 

 세상은 변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더 이상 경기를 타는 단순 원자재가 아니라,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다. 과거의 사이클로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시대에 마차의 속도로 미래를 계산하는 것과 같다. 코스피 5,000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지금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변화한 산업의 구조를 직시하고 이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는 용기다. 대한민국 증시의 재평가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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