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미국 전쟁 쇼크] 결국 ℓ당 2000원 넘긴 기름값… 정부, 30년만의 ‘가격상한제’ 고심

-이재명 대통령 “부당폭리 엄단” 지시…범부처 전면대응 체계 전환
-정유업계 협조 약속에도 유가↑… 시장왜곡·재정부담에 신중 기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8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8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중동 전쟁의 영향에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일부 서울 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ℓ당 가격이 2000원을 넘기자 정부가 ‘가격상한제’ 카드를 고심하고 있다. 다만 지난 30년간 사실상 사문화된 비상조치인데다 시장 왜곡과 재정 부담 등 감내해야 할 부작용이 만만찮다.

 

 8일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최고가격 지정제’라는 초강수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미국 및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가운데 통상적으로 소요되는 2주라는 시차도 없이 국내 석유류 가격에 즉각 반영된 점을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것이 배경이 됐다. 

 

 앞서 대통령은 지난 5일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이튿날에도 “기름값 바가지처럼 공동체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부당 폭리를 취하려는 반사회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아주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뒤 범부처 합동점검단이 불법 석유 유통, 매점매석, 가짜석유·혼합판매 등 불공정 거래 행위 집중 단속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유소들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법무부도 유가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대검찰청에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재정경제부는 유류세 인하 여부를 검토 중이다. 또한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총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 국내 정유 4사를 회원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로 둔 대한석유협회, 석유대리점들의 단체인 한국석유유통협회, 전국 주유소 사업자를 대표하는 한국주유소협회는 “국제 유가 인상분이 주유소 가격에 급격히 반영되지 않도록 협조하겠다”고 알렸다.

 

 그럼에도 국내 주유소의 기름값은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7일 밤 11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90.87원이며, 서울의 경우 평균가는 1942.08원이다. 결국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의 기름값은 보통휘발류 2049원, 경유 2139원, 고급휘발유 2269원을 찍었다. 

 

 

 이에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를 근거로 석유 최고가격 지정 고시를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해당 조항은 석유 가격이 현저히 등락해 국민 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산업통상부 장관이 판매 가격의 최고액을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고, 초과 수익은 정부가 환수한다.

 

 다만 실제 도입 여부를 놓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 최고가격 지정을 포함해 모든 정책적 옵션을 열어두고 검토하는 단계”라며 “시장 부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도입 시기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중한 자세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누를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에서 공급 물량을 줄이거나 판매를 기피하는 ‘공급 절벽’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석유사업법 제23조에는 가격을 통제받은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된 만큼, 민간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와 비축유 방출 등 다른 대안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국내 유가 시장의 흐름을 좀 더 살펴보고서 최고가격제 발동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국내 원유·석유제품 비축량은 1억5700만 배럴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3개월 내 추가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을 포함하면 약 208일분의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부 비축분(7648만 배럴)은 국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전략 비축 물량으로, 정유사들이 상업적으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물량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국내 정유 4사는 각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제 원유 시장 동향과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미국·브라질·서아프리카 등 중동 외 지역에서 대체 원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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