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공지능(AI)로 노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면 해당 기술을 쓰면서 놀아보는 게 최선이다. 대학 시절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던 89학번 선배가 해준 말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컴퓨터 잘하려면 공부하지 말고 이걸 갖고 놀아봐!” 이건 기술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찌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20여년 전인 지난 2005년 펴낸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근면·성실하게 일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창의성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잘 노는 법과 휴식의 심리학적 가치를 명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구는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일만 아는 사람은 결국 자기 세계에 갇혀 한계를 드러낸다”란 문구였다. 직장생활 초년생이던 시절 읽은 책이라 그동안의 경험으로 실제 검증해보자면 정말 잘 노는 사람은 극히 드문데 이들이야말로 성과도 뛰어났고 지속적이었으며 주변 평판도 좋았다. 잘 노는 것은 사람들과의 공감 능력도 좋다는 걸 의미한다.
시대는 또 다시 급변해 AI의 시대다. 기존 첨단 기술이 단순업무를 대신했다면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AI가 전문직 직종을 대체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코딩부터 법률 검토, 의료 상담에 교육까지 AI가 인간 전문직을 대체하는 시대다. 강남구 대치동에서는 기존 사교육을 뒤로하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예체능 및 기술 분야로 사교육 시장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AI가 바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놀아야 할 때다. 여기에 당연히 그동안 나 혼자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은 들어설 틈이 없다. AI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도 앞으로 중요해질 소통의 능력과 통찰력에 주목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시대의 최고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인간의 언어(Natural Language)’다. 기술적 숙련도보다 호기심, 문제 정의 능력,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글 차이나 대표를 지낸 AI 전문가 리카이푸는 자신의 저서 ‘AI 슈퍼파워’에서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더욱 ‘인간다운 일’로 이동해야 한다.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공감, 돌봄, 진정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다”고 강조했다. 연산과 최적화의 영역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감성 지능(EQ)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 협업, 배려의 영역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놀 수 있는 AI 서비스는 모조리 외국산이라는 점이다. 구글, 오픈AI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생성형AI 서비스 일색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IT 열풍이 불던 시절 대한민국은 다음, 네이버, 싸이월드, 프리챌 등 재밌고 놀기 좋은 다양한 서비스와 커뮤니티를 온라인에 구축하면서 IT 역량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AI는 이제 어느 한 나라나 기업이 독점하기에는 그 파급력과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지고 있다. 그래서 자주적 인공지능을 가리키는 ‘소버린 AI’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외산 기술이나 해외 빅테크 인프라에 종속되지 않고 자국의 데이터·문화·인프라·인력을 바탕으로 자체 구축하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AI 생태계 및 역량을 의미한다. 정부 역시 소버린 AI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복안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국내 테크 기업들에서 내놓는 AI 서비스는 아쉬운 수준이고 주목 받는 스타트업 AI 기업도 찾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놀이 생태계 조성이다. 하루라도 빨리 토종 AI 서비스로 놀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 네이버·LG·SKT·업스테이지 등이 이미 관련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글로벌 AI 서비스에 편중돼 있는 상태다. 공공 서비스와 가깝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부의 육성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이라도 더 속도를 내야 할 때다. 안 그러면 소버린 AI는 머나먼 미래가 되고 말 것이다.
<한준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