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수도 경주에 21개 별이 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집결하는 각국 정상 및 정상급 대표들이다.
28일 외교가에 따르면 경북 경주시에서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 더해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21개 APEC 회원 대표가 참석한다. 이들은 본회의 개막을 앞두고 29일부터 경주 땅을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처음이자 2019년 이후 6년, 시 주석은 2014년 이후 11년만의 방한이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미·중 정상을 잇달아 국빈으로 맞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공식방문으로 방한한다. 외국 정상의 방한 중 국빈 다음으로 격이 높다. 다카이치 총리는 사실상 취임하자마자 한국을 찾는다. 앤서니 앨버니즈 호주 총리,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도 행사를 함께한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중남미 정상 중 유일하게 이번 APEC에 참석한다. 칠레는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중남미 국가이며 남미에서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한 나라다.
대체로 정상이 참석하지만 일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인사가 대표를 맡을 예정이다. 러시아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대신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국제문제 부총리를 필두로 한 대표단을 보낸다.
대만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제약으로 정상급 총통 불참이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하여 행정원 부원장을 지낸 린신이 총통 선임고문이 참석할 예정인데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때도 대만 대표를 맡은 인물이다. APEC은 주권국이 아닌 경제체(economy)로서 참가 자격을 갖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다자협의체에서 쓰는 ‘회원국’이 아닌 ‘회원’으로 표현하며 이에 대만도 일원이 될 수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정책에 따라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상급이 아닌 존 리 행정장관이 온다. 최근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신임 대통령을 뽑은 페루에서는 장관급 인사가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멕시코에서도 장관급 인사가 참석한다.
APEC 소속은 아니지만 깜짝 게스트도 있다. 칼리드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본회의 1세션에 참석한다.
이들 주요 정상은 대체로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의전차량 행렬(모터케이드)을 대동한 승용차 행렬로 경호받으며 경주까지 이동할 전망이다.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서 국내선 민항기 또는 KTX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경주지역 12개 주요 호텔에는 최고급 객실인 PRS(정상급 숙소) 35개가 마련됐다. 21개 회원 정상의 숙소는 대체로 보문단지 내 배치됐다. 미국은 힐튼호텔, 중국은 코오롱호텔, 일본은 라한셀렉트로 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각국 정상이 모이는 만큼 세심한 의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정상 및 대표단을 근접 수행하는 의전관 70여명은 숙소에서 회의장까지의 안전한 이동 등을 책임지게 된다.
한편 20년 전인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도 21개 정상 및 정상급 대표가 모인 바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주석,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집결해 회담을 가졌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