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K드라마, K팝 등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어는 몰라도 빨리빨리라는 단어는 쉽게 익힌다. 심지어 현대차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호세 무뇨스 사장도 빨리빨리 문화를 언급했다. 그는 “우리 현대차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빨리빨리 문화”라며 “도전은 계속 되겠지만 현대차는 빠르고 유연성 있게 대응 가능하며, 빨리빨리 문화가 앞으로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한 과정 없이 간결히 속도를 내는 이 문화는 원하는 결과를 단기에 내는 장점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시간을 돌아보니 새 정부에도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된 듯 보인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으로 쏠린 대한민국 투자 수단을 자본 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자금 이동)를 선언했다.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고 자본 시장을 활성화해 부동산에 묶인 돈을 자본 시장에 흘러가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후 이를 위한 정책들을 쉴 틈 없이 시행했다. 증시 부양 의지를 밝히면서 취임한 지 일주일만인 지난달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했다. 지난 정권의 밸류업 정책을 이어가고 주식 시장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상법 개정안도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했다. 부동산에 대해선 초강도 규제로 대응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코스피는 연고점을 거듭 경신하고,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머니무브 구상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 구조가 지나치게 부동산 중심으로 치우쳐 환금성이 낮아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고 다른 투자처에 돈이 가지 않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과거 부동산 규제 이후에도 집값 상승에 대한 학습 효과로 장기적인 투자 심리는 쉽게 꺾이지 않고, 주식 시장 역시 더 많은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밸류업 정책의 벤치마킹 사례로 꼽히는 일본 증시의 부흥은 정부의 구조개혁으로 이뤄졌다. 단숨에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10년 전 아베 신조 내각이 추진한 거버넌스 개혁에서 시작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2년 말 취임하자마자 통화정책, 재정정책, 구조개혁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였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정비했고 일본은행과 공적연금(GPIF)은 일본 주식 투자를 확대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규제로 인한 수요 억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명확한 주택 공급 대책이 없으면 집값이 오른다는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없다. 지방에는 주택을 다 짓고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 규모가 최대치로 불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주택 수요와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지방의 넘치는 공급, 이 간격을 줄여야 하는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근성으로 우리는 한밤중 계엄 선포부터 대통령 탄핵 가결까지 단 12일 만에 이뤄냈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지 3년8개월여 만에 조기 졸업에 성공했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모으고 갈등을 정면 돌파로 해결한 국민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다. 새 정부도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을 살려 한 달간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이제는 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줄 차례다. 수십 년간 부동산에 집중된 가계 자산 구조를 한 번의 노력으로 바꾸는 방법은 없다. 5년, 10년 장기적인 시각으로 국민에게 부동산 말고도 다양한 곳에 투자처가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증시에 상장한 한국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그 과실을 주주와 함께 공유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여기에 지름길은 없다.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각종 정책과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지난하지만 정공법으로 나설 시간이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