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워진 경제에 대해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얘기하지 않았다.”,“토론이 퇴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18일 진행된 대선 TV토론 이후 주변의 반응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대선 후보들이 어떤 경제 정책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피력하고 개진해야 할 시간인데 비난하고 공격하기 바쁜 것 같아 아쉽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선거 역사에서 가장 성공작으로 꼽히는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Stupid! It’s the economy)’로 1992년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현직인 조지 하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에 맞섰던 문구다. 경제 불황이었던 미국의 상황과 부시에 대한 책임론을 동시에 겨냥해 결국 승리를 끌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16대 대선 토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이 권영길 신드롬까지 만들어내며 국민의 공감을 샀다.
1997년 시작된 대선 TV토론은 유권자를 위해 열리는 몇 안 되는 이벤트 중 하나로 경제와 사회, 정치에 대해 각 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정책과 공약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경제 분야를 주제로 열린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 첫 TV토론에서는 저성장 극복과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 트럼프 시대의 통상 전략,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주제를 줬지만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이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기대했던 국민이라면 실망했을 수 있다.
올해 경제 성장률 0%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시름은 깊어져 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들에게 일정의 정책 자금 대출은 상당 정도 탕감해주는 식으로 채무 조정을 하자, 국가 부채를 감수하고라도 다른 나라처럼 서민들의 코로나 극복 비용을 정부가 부담했어야 한다”고 말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금융지원과 소비진작 대책이 필요하다”면서도 “코로나 때의 부채 문제로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미국 텍사스의 예를 들며 지역 경제에 맞게 최저임금을 자율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저성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해법은 달랐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더 크게 휘청이고 있다. 수출의 위협과 내수 부진으로 인한 시급한 경제 현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토론이 펼쳐지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지만 한 후보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국민이 친숙하지 않은 용어까지 얘기하며 소모적인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대선 토론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정책과 해법으로 일할지, 이것이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영향을 끼칠지를 가늠하게끔 설파하고, 설득해 유권자의 표를 얻는 거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후보들이 말하는 공약을 검증하고, 메시지를 펼치는 것이지 서로를 헐뜯거나 답을 정해놓고 하고 싶은 말을 공격적으로 퍼붓는 자리가 아니다. 앎과 모름을 테스트하는 것도, 장학퀴즈도 아니다. 서로의 낯빛을 붉게 만드는 시간은 더욱 아니다.
국민은 토론에서 후보자들의 태도도 함께 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져가고 있다는 인상만 짙어지고 있다. 이번 토론 또한 건설적인 토론이라고 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이제 사회분야와 정치분야에 대한 토론이 기다리고 있다. 대선 토론이 과거에 비해 점점 실효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남은 대선 토론은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지 않는 품격있는 토론을 보여주는 시간이길 바란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