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주주 이익을 올리는 것입니다.”
세계적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9월 13일자 뉴욕타임스에 이러한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그는 “기업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라며 ‘주주 지상주의’를 설파했다. 당시 상당수 기업들은 이익 극대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 큰 성과를 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스승으로 유명한 벤저민 그레이엄은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하다. 경영진에게 압박을 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미래 이익이나 보유자산 청산을 보고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한 앞서가는 투자자였다.
이들의 투자 철학은 지금도 많은 투자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차근차근 양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오는 6월 치러질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주 환원, 주주권 강화 등이 또다시 논쟁적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사주 소각 제도화를 언급하자 재계와 증권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 후보는 지난달 21일 금융투자업계와 가진 정책 간담회에서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며 ‘코스피 5000 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자사주(자기주식)는 자사가 발행한 주식을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말한다. 상법에서는 자기주식의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부터 상장법인들이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자기주식 취득을 발행주식 총수의 5% 이내에서만 취득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자사주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친화 정책이다.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게 되면, 배당처럼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해주는 효과가 있다. 자본금은 줄지 않고, 유통 주식 수만 감소해 실질적인 주가 부양 효과가 크다. 진정한 주주 환원은 자사주 소각으로 이어져야 실효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선 자사주 소각을 주주환원 수단으로 활용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 뉴욕이나 델라웨어주는 소각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자사주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가총액과 주가 평가 지표를 계산할 때도 자사주를 제외하고 산정한다.
미국의 거대 기업 애플도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약 820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했다. 독일은 총주식의 10%만 자사주로 보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자사주 소각과 관련한 강행 규정이 없는 상태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고 보유 중이다. 한국 증권학회지에 실린 논문 ‘자사주 보유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2004~2018년 전체 상장사 중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곳은 2.4%에 불과하다. 자사주 매입(37.4%), 처분(24.7%)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SK·롯데지주·한화·CJ·등 주요 지주사들 역시 자사주 소각 계획이 검토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자사주를 대량 보유하고도 소각은 물론 배당조차 하지 않는 상장사들도 적지 않다.
자사주 소각은 분명 주주 입장에선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세계 꼴찌 수준의 주주 보호와 주주 환원율. 심지어 ‘배당 꼴찌’란 꼬리표도 좀처럼 떼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제도와 관행이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강력한 주주 환원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이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코스피 5000’은 꿈의 숫자다. 대격변의 시대, 모두의 노력 없이는 ‘주가지수 5000’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김민지 경제부장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