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 갚는 사회] ‘벼랑 끝 서민’ 올해 개인회생 신청, 역대 최고치 넘어서나

고금리 장기화·경기 악화로 채무 상환 어려워져
20대 개인회생 신청 비중도 증가세
"취약계층 대상 세심한 정책적 배려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개인회생 신청건수가 역대 최고치인 2014년 건수를 뛰어넘을 거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경기 악화와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빚 상환이 어려워진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취약계층이 막다른 길에 내몰리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인회생 신청 현황. 대법원 통계월보

20일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9월 중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9만43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한 해 신청건수(8만9966건)를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1~9월 중 개인회생 신청건수(6만4546건) 보다도 40.1%나 많다. 이러한 속도라면 개인회생 신청이 가장 많았던 2014년(11만707건) 기록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개인회생제도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개인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적 절차다. 채무자가 채무를 조정받아 법원이 허가한 변제계획에 따라 3년 이내(최장 5년 이내) 채권자에게 분할변제를 하고, 남은 채무는 면책하는 게 특징이다. 원금 감면비율은 약 70%다. 앞서 2018년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개인회생 변제기간이 종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 바 있다.

 

올해 개인회생 신청건수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회생법원이 1만8469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수원회생법원(1만4183건), 대구지방법원(8593건), 인천지방법원(7956건), 부산회생법원(7173건)이 뒤를 이었다.

 

개인회생 신청은 최근 2년 연속 증가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9만2587건이던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020년 8만6553건, 2021년 8만1030건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줄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전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이자상환 유예 등 서민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등이 이뤄진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난해엔 개인회생 신청건수가 1년 전보다 8936건 늘며 증가세로 돌아서더니 올 들어선 9개월 만에 지난해 신청건수를 넘어섰다.

 

개인회생의 증가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서민들이 갚아야 할 이자와 원금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 소득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젊은층의 개인회생 신청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4월 내놓은 ‘2022년 개인회생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30세 미만 청년’의 개인회생 신청 비중은 2020년 10.7%에서 2021년 14.1%, 지난해 15.2%로 꾸준히 상승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30세 미만 청년’의 가상화폐, 주식 투자 등 경제활동 영역의 확대와 ‘30세 미만 청년’의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실무준칙 제424호 시행 등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역시 ‘30세 미만 청년’의 개인회생 비중이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약계층이 한계상황에 봉착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 경제연구소 소장은 “부채 증가세에 맞물린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서민과 중산층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채무조정제도가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무조정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유발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개인회생 시 채무조정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일부러 돈을 갚지 않고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회생이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도 밝혔다. 안 소장은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잘 갚아나가면 금융회사도 약 30%의 채권은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5% 남짓인 NPL 수익률보다 높아 금융사로서도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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