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부실만 더 키울 수 있어

연초 신용대출 증가세에 추가 규제 시사…2금융권 ‘풍선 효과’ 우려
코로나19 여파 등 고려해야…총량 규제보다 선별적 구조조정이 바람직

안재성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기자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연초부터 은행권 신용대출이 또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총 134조1015억원으로 지난해말 대비 4534억원 늘었다. 이 기간 중 신규로 개설된 마이너스통장만 7411개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역대 최고 증가폭(4조8495억원)을 기록했다가 12월 443억원 줄어 1월(-2247억원) 이후 11개월만에 첫 감소세를 나타냈던 신용대출이 한 달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은행들이 지난해말에 판매 중단했던 신용대출을 다시 취급하기 시작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지난 4일 은행들의 판매 재개 즉시 신용대출이 2789억원이나 증가했다. 또 코스피지수가 역대 최초로 3000선을 돌파한 뒤 3100선도 넘어서는 등 지속 상승세인 점도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를 부추긴 것으로 여겨진다.

 

가계부채가 이미 국내총생산(GDP) 수준까지 부풀어 오른 상황에서 대출 증가속도가 또 다시 빨라지는 모습이 잡히자 금융당국은 긴장한 모습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가계부채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긴장하고 있다”며 “가계부채 총량 관리 체계를 당분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금융당국은 은행 부행장들을 긴급 소집하는 등 신용대출 증가세를 중심으로 모니터링 중이며, 곧 은행들로부터 가계대출 계획서를 받은 뒤 총량 관리를 보다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1분기 중 가계대출 추가 규제와 부실화 대응 방안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월 2조원인 은행권 신용대출 총량 규제 강화,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무작정 가계대출을 일정액 이상 실행하지 말라며 은행을 억누르는 방식은 전형적인 관치금융으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자칫 부실만 더 키울 위험이 높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생활고 탓에 가계대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취약가구와 영세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

 

또 음식·숙박업, 여행, 항공, 보험설계사, 카드모집인 등 대면 서비스 관련 업종이 사실상 고사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한 빚투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 투자)’ 열풍 역시 가계대출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찍어 누르면, 결국 대출 수요가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 2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7000억원이나 급증해 2016년 12월 이후 약 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금융권은 은행보다 금리가 훨씬 높다. 따라서 은행 문턱을 높일수록 소비자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커져 후일 더 큰 부실로 돌아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보다 선별적 규제를 주문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대출 총량에만 집중한 규제는 좋은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며 “부실 위험이 가장 큰 부분부터 선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가계대출 증가폭을 축소해 숫자를 보기 좋게 만들려면, 은행을 윽박지르는 게 가장 편하다. 그러나 이는 효과적인 가계대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프리워크아웃 등 취약가구의 채무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부실화 위험이 높은 대출부터 빠르게 구조조정해야 후일의 ‘부실 폭탄’을 막을 수 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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