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의 장고가 이어지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이 금융위원회의 적기시정조치 부과 처분에 불복해 낸 가처분 심문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18일 현재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법원에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 롯데손해보험은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된다. 반대로 기각되면 그 충격파는 예상보다 크고 오래갈 수 있다.
이은호 대표이사가 직접 심문기일에 출석한 것만 보더라도 이번 사태가 롯데손해보험 입장에서 얼마나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방청석이 20석 정도 되는 좁은 법정 안을 양 측 변호인과 관계자들이 채우고도 모자라 일부는 서서 심문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원고인 롯데손해보험 측이 먼저 30분간의 프레젠테이션을 요청하자, 심문이 길어질 것을 직감한 재판부가 즉각 난색을 표했을 만큼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고민도 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손해보험 측은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상회하는 지급여력비율과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수치를 들어가며 적기시정조치의 위법성을 거듭 강조했다. 금융위가 롯데손해보험에 내린 경영개선권고는 3단계로 이뤄진 적기시정조치 가운데 가장 가벼운 조치다. 이러한 처분을 내린 금융위가 적기시정조치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공공복리에 큰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고시된 적이 없는 비공개∙비계량평가 내부기준을 근거 삼아 회사를 위기에 빠트리는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느냐 여부다. 적기시정조치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된 비계량 평가기준이 그 어디에도 고시된 바 없다는 게 롯데손해보험의 일관된 주장이다.
반면 금융위 측은 적기시정조치는 뱅크런 같은 위기 사항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맞섰다. 경영개선권고를 받은 롯데손해보험이 그에 따른 경영개선계획을 금융당국에 제출해 승인받고 이행하면 그것으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란 논리로 재판부를 설득했다. 보험업 감독규정 및 시행세칙, 가이드라인 체계에 따라 금융기관 운영실태를 평가하고 그 등급에 따라 적기시정조치를 내리는 건 오랜기간 유지돼온 제도란 설명도 덧붙였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재판부가 나서 상황을 정리했다. 롯데손해보험은 다음달 2일까지 경영개선계획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재판부는 그 전에 가처분 사건의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5일 적기시정조치가 내려진 뒤부터 롯데손해보험은 임직원 한사람 한사람이 고객사를 찾아가 법원의 가처분 결과를 보고 퇴직연금을 옮길지 말지 결정해달라고 읍소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고객사들은 적기시정조치 대상기관에는 퇴직연금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서 금융위가 적기시정조치를 하려면 미리 그 기준과 내용을 정해 고시해야 한다고 명문화한 이유는 수범자에게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행정청의 자의적 조치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적기시정조치는 보험사에 뱅크런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강하다. 그렇다면 그 조치의 근거가 되는 평가기준은 계량이든, 비계량이든 적법한 위임의 근거를 갖춰 대외적으로 공개해야 맞지 않을까. 만약 금융당국이 감독의 수월성과 편의성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다면 그건 또 하나의 행정편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