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화의 시작 2025년, 진화의 시작 2026년

 

우리가 알던 상식의 첫 장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한 해였다. 올해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그야말로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코스피 지수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고지인 4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연간 상승률은 70%를 상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재명 정부가 핵심성과지표(KPI)로 내걸었던 ‘코스피 5000’ 시대가 더는 허황된 꿈이 아닌 가시권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이 거대한 변화의 동력은 어디서 왔을까?

 

금융 전문가로서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단순한 지수의 레벨업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맹신해왔던 ‘시장 공식’이 올해는 완전히 깨졌다는 사실이다. 과거 한국 증시를 지배하던 철칙 중 하나는 “환율이 오르면(원화 약세) 외국인은 떠나고 주가는 폭락한다”는 것이었다. 수출 중심의 소규모 개방 경제 구조상 환율 급등은 곧 국가 부도 위험이나 펀더멘털 붕괴의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며 원화 값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질주했다. 환율 상승과 주가 상승이 동행하는 기현상,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이 깨진 것이다. 이 현상의 배후에는 전례 없는 ‘글로벌 유동성 공조’가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일본의 다카이치 내각, 그리고 한국의 이재명 정부까지, 대만을 제외한 주요국 리더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막대한 돈을 시장에 쏟아냈다. 시중에 원화가 넘쳐나니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원화값 하락과 반대로 실물 자산인 주식의 가격은 유동성의 힘을 빌려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는 과거 일본이 아베노믹스 시절 경험했던 엔저 속 주가 폭등과 궤를 같이한다. 엔화가 반토막 날 때 일본 증시가 5배나 상승했던 그 메커니즘이 한국에서도 작동한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표 산업인 반도체 산업 사이클의 변화도 큰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학습’에서 ‘추론’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슈퍼 사이클을 맞이했다.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수요는 폭발하는 구조적 불균형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을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렸다. 반도체는 2년 오르면 1년 하락한다는 공식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이번 반도체 상승 사이클은 최소 3~4년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의 모험자본 육성정책도 코스피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상법 개정을 통해 대주주의 가치와 소액주주의 가치를 일치시키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했고,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통해 주식투자에 유리하게 세금을 조정했다. 코스피 5000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을 통한 진짜 외침이었던 것이다.

 

결국 올해의 상승장은 유동성의 힘과 기업 실적의 힘,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모험자본 육성정책이 맞물려 터진 결과물이다.

 

이제 해가 바뀐다. 다가오는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즉 ‘붉은 말’의 해다. 천간의 병(丙)은 태양처럼 타오르는 양(陽)의 불을, 지지의 오(午) 역시 역동적인 불의 기운을 가진 말을 상징한다. 두 개의 불기운이 겹치는 이 해는 전통적으로 강한 에너지와 급격한 확장, 그리고 열정을 의미해왔다.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빠르고, 변동성이 큰 장세가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말은 본디 달리는 데 특화된 동물이다. 붉은 말의 해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시장의 역동성과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며, 붉은색이 상징하는 상승장의 기운은 내년 시장을 더욱 역동적으로 물들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변화의 시작이었다면, 내년은 붉은 말을 등에 업은 코스피의 진화가 시작될 원년이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정책의 진화이다. 상법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로 변화의 큰 판은 만들어졌다. 이제 기업들이 답을 할 차례이다. 기업들의 주주환원 실천은 진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두 번째는 산업의 진화다. 올해가 AI 추론 시장의 개화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의 해였다면, 내년은 피지컬 AI 자율주행, 로봇 등의 등장과 함께 반도체 수요 기반이 더욱 탄탄해지는 질적 성장의 시기가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재정 정책의 진화다. 올해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가계 소비를 지원하는 ‘마중물’ 성격이었다면, 내년은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생산적 투자’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투자, 설비투자, 그리고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등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될 것이다. 이는 기업들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 회복을 견인할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는 내년 시장을 낙관한다. 말은 멈추지 않고 달리기 때문이다. 상승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올해처럼 일방적이지 않고, 급등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내년 투자 전략의 핵심은 ‘속도’와 ‘방향’의 균형이다. 변동성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공포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저가 매수의 기회다. 정치적 이슈나 금리 노이즈로 시장이 출렁일 때가 바로 붉은 말의 등에 올라탈 타이밍이다. 올해의 성공에 도취되지 않고, 더욱 정교해진 눈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달리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안목이 필요할 뿐이다. 2026년, 요동치는 말 등 위에서 중심을 잡고 더 멀리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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