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처황제주였던 미래산업의 불편한 몰락

지난 19일 미래산업은 “정문술 고문이 보유주식 2254만6692주(7.49%) 전량을 장내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우리나라 벤처 1세대이자, 벤처리더스클럽 회장, 라이코스코리아 대표이사,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 KAIST 이사장 등을 역임한 국내 벤처기업의 산증인인 정 고문이 지난 1983년 자신이 설립한 미래산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같은 날 정 고문의 부인 양분순 씨도 같은 날 139만159주(0.46%)를 함께 매각했다. 처분단가가 1785원임을 감안하면 정 고문 부부는 400여억원을 거머쥔 것으로 추정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요 주주의 경우 보유비율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영업일 이내에만 보고하면 된다.

미래산업에 따르면 정 고문 등 최대주주 측은 지난 14일 장중 지분을 대거 처분했고, 4거래일째인 19일에 보고했기 때문에 공시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게다가 정 고문은 지난 1999년부터는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나 최대주주 지위만 유지해 왔다.

사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최대주주가 지분을 처분한 것은 크게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법이 있고 규정이 있으며 그는 그것을 지켰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나 이에 대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주가가 지난 2002년이후 10여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달아오른 투자심리와 희망을 갖고 지분을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을 이용해 바로 지분을 '털어버렸다'는 소리 밖에 되질 않기 때문이다.

종가 기준으로 올해 연저점이 291원이었던 미래산업은 사실 오를 만한 이유가 없었다.

반도체 장비 및 칩 부착 장비(Chip Mounter)의 제조, 판매를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 상반기 매출이 192억1000만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0.9%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50억2000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적자 전환했으며, 순손실도 65억5000만원으로 적자세를 이어갔다. 반도체 검사장비 시장은 국내외의 다양한 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는데다, 반도체 업황의 부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미래산업의 현 대표이사인 권순도 사장과 권국정 이사도 각각 60만주, 14만2000주를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최대주주 4명이 동시에 같은 날 지분을 장내에서 매각했는데 이에 대해 회사측은 이에 대해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공시한 것이며, 프리미엄 없이 현 경영진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정주주에게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동안 회사를 지켜온 경영진과 임직원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판단해 장내 매도를 통해 현 경영진에 선의의 승계를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장에 내다 판 것이 어떻게 선의의 승계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국민주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했던 포항제철(현 POSCO)의 지분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팔아버렸고, 지난 상반기 매출액만 32조7000억원이 넘었던 이 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51.11%나 된다.

정부가 국영기업 하나를 국민에게 판다고 내놨지만 결국 외국인에게 팔아버린 꼴이 된 셈이다.

미래산업의 지분 2.01%(603만9019주)를 가진 우리사주조합이 대주주가 된 상황에서 사실상 창립자와 대표이사 등이 회사를 '버린' 것이 아니냐는 아우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미래산업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시쳇말로 '멘붕'상태다. 정 고문에 대한 육두문자부터 시작해 이 회사와 비슷하게 테마주로 편입된 이후 지분을 조금씩 처분해 논란이 된 써니전자와 비교하며 한큐에 핵폭탄을 던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정 고문은 10년전 안철수 원장과 대담에서 벤처기업인이 사업이 아니라 주가를 신경쓰는 것은 사기라고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사실상 자기가 비난했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물론 그의 발언은 당시 머니게임을 하던 일부 빗나간 벤처인을 비판하는 말이었고, 정 고문이 의도적으로 테마를 띄운 것은 아니겠지만 묘하게 오버랩될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테마주로 부각되기 전 70억원 가량이었던 그의 지분은 400억원이 넘게 됐고 정 고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번에 털어버리며 '대박'을 쳤다.

그리고 시장에는 테마를 소재로 조금이라도 벌어보려 '떡밥을 덥썩 물었던' 개미들의 시체만이 널려 있는 상태다.

지난해부터 시장을 들끓게 만들었던 정치테마주를 소재로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찍는다면 이러한 결말이 날까?

아직 대선조차 끝나지 않았는데 시장에서 들끓고 있는 테마주의 결말을 미리 본 것 같아 씁쓸함만 가득하다.

유병철 세계파이낸스 기자 ybsteel@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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