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고액 성과급이 산업계 전반의 보상 체계를 흔드는 새 기준점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주요 대기업 노동조합에선 지난해 노사 합의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고 지급 상한까지 없앤 SK하이닉스처럼 실적에 걸맞은 성과금을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특히 삼성전자에서는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체계가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떠올랐고, 자동차 업종인 현대자동차에서도 성과배분 요구가 한층 커지는 모습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성과급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삼성 5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의 15%로 고정하고 성과급 상한제를 없애라는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높은 성과를 달성한 만큼 성과급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게 노조 측의 논리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3조6011억원이다. 역대 네 번째로 영업이익 규모가 컸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 규모는 57조2000억원(잠정 기준)에 달했다. 이러한 흐름이라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규모가 글로벌 빅 테크를 앞지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 노조는 오는 23일 평택사업장에서 대규모 경기대회를 한 후 다음 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노조는 지난해에도 ‘낡은 성과급 제도와 변함없는 회사’라는 제목의 공문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전달하며 “삼성전자는 여전히 투명하지 않은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 방식으로 성과급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SK하이닉스 사례가 본보기가 됐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노사 임금교섭을 통해 기본급 최대 1000%를 한도로 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 상한 기준을 없앴다. 그 전까지 연봉의 최대 50%, 기본급의 최대 1000%였던 상한을 폐지한 것이다. 실적이 좋아질수록 임직원들의 성과급 수령액이 커지는 구조다. 그러면서 PS 상한으로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설정하고 이 기준을 향후 10년간 적용하기로 했다. 올해 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2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단순 계산으로 PS 재원이 약 20조원이라고 계산하고 이를 지난해 말 기준 임직원 수 3만4466명으로 나누면 인당 성과급은 5억8000만원에 이를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요구안으로 기본급 인상과 함께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안을 확정했다. 여기에 상여금 800%와 완전 월급제,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성과급 적용 대상을 넓히는 방안도 포함됐다. 직접 SK하이닉스 모델을 그대로 따랐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사례를 계기로 우수한 실적을 내면 임직원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더 키워야 한다는 기대치가 한층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반도체처럼 실적 변동성이 큰 업종에서는 성과급 재원과 영업이익 간 연동성이 높아질 경우 업황 악화 때 되레 노사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자동차 업종 역시 전기차 전환, 미국발 관세 리스크, 중국 시장 둔화 등 대외 변수가 적지 않다. 연구개발비 지출 및 주주환원 여력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노조가 이익배분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는 건 실적은 회사가 아니라 현장이 함께 만든 것이라는 인식이 산업 전반에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대기업 노사 협상에서는 ‘누가 더 벌었느냐’보다 ‘번 돈을 얼마나 나눌 것이냐’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이 업종 경계를 넘어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오현승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