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 특정 데이터셋의 반복 학습은 높은 정답율을 보장하지만, 조금만 낯선 상황이 주어지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No Free Lunch 정리가 시사하듯, 모든 문제에 최적인 단일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유아 선행학습 열풍을 돌아보게 하는 날카로운 비유다. 좁은 과제에 맞춘 '빠른 최적화'가 아이의 근본적 문제해결 능력이나 일반화 능력의 성장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이 ‘빠른 최적화’가 비유가 아닌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국내 일부 학원가에서는 초등 5~6학년이 고등수학을 배우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물론 충분한 반복 훈련을 거치면 초등학생도 미적분 문제의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수학적 사고가 아닌 패턴 매칭이며, 개념적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절차 암기에 불과하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추상적·가설적 추론이 가능한 형식적 조작기는 11세 전후에 시작된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인 작업기억 용량도 3~4세에는 성인의 30%에 불과하며, 성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16세 이후다. 아동의 뇌에는 이처럼 엄연한 생물학적 제약이 존재하며, 이를 건너뛸 지름길은 없다. 이 제약을 무시하고 발달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개념을 주입하면, 아이에게 남는 것은 깊은 이해가 아니라 기계적 습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기계적 습관이 이후의 학습을 체계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이다. 미적분은 형식적 조작기에 이르러 추상적·가설적 사고가 가능해진 후 그 개념적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를 구체적 조작기로 앞당겨 학습하면, 아이는 자신의 인지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즉 구체적이고 고정된 표상으로 개념을 왜곡하여 수용한다.
예컨대 변수(x)는 ‘임의의 값을 자유롭게 취하는 추상적 양’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특정 숫자’로, 함수는 ‘두 양 사이의 대응 관계’가 아니라 ‘숫자를 넣으면 답이 나오는 기계’로 굳어진다. 이후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들어 극한·연속성·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제대로 배워야 할 시점이 와도, 이미 고착된 구체적 표상이 추상적 재개념화를 가로막는다. 결국 미분과 적분의 근본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채, 각각을 별개의 공식으로 암기하는 데 그치게 된다. 일찍 배웠다는 사실이 오히려, 제대로 배울 기회를 잠식하는 것이다.
‘빠른 최적화’의 문제는 학업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발달단계에 적합하지 않은 교육은 우리 아이들의 정서와 동기에도 대가를 요구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영유아기 학습 사교육은 언어능력, 문제해결능력, 집행기능에 유의미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아동의 자존감 하락과 부정적 관련을 보였다. ‘빠른 최적화’가 약속하는 성과가 측정 가능한 인지 역량의 향상으로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해외 종단연구들은 ‘빠른 최적화’의 대가를 더 긴 시간축으로 드러낸다. Marcon(2002)은 학업 중심 유아교육을 받은 아동이 초기에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6년 후에는 아동 주도형에 비해 오히려 유의미하게 낮은 성적을 기록했음을 보고했다. Schweinhart와 Weikart(1997)의 추적 연구는 이 역전의 궤적이 학업을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직접교수 집단은 다른 두 집단에 비해 중범죄 체포 건수가 3배 높았고, 47%가 재학 중 정서적 장애 치료를 받은 반면 학생 주도형 학습 집단에서는 6%에 불과했다. ‘빠른 최적화’의 대가로 사회적 추론과 자기 조절 등 삶의 핵심 역량을 키울 기회를 앗아간 결과다.
이들 연구가 일관되게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발달 단계에 맞는 풍부한 상호작용은 수십 년 후 뇌 구조와 의사결정 능력에까지 긍정적 흔적을 남기는 반면, 학업적 지식의 주입식 반복 훈련 효과는 빠르게 소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6년 발표된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입법은 선행학습 과열을 개별 부모의 선택 문제로 방치하지 않고, 발달단계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직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얼마나 빨리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게 했는가”가 본질이다. ‘빠른 최적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발달의 시간표를 존중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아이의 뇌가 스스로 깊어지고 넓어질 시간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가장 확실한 장기 투자다.
유제광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 동국대학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