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5월 첫날 폭등하면서 6900선을 돌파했다. 이제 7000선도 눈앞이다. 이란 문제는 여전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 30년 국채 금리는 5.0%를 넘어섰으며, 유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리 부담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전례 없는 수요의 폭발이다.
빅테크들의 AI 투자는 멈출 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4대 빅테크의 올해 자본지출(CAPEX) 합계는 725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105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수치다. AI 서비스는 클라우드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고, 클라우드는 반도체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이 거대한 투자의 흐름은 고스란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흘러들어오고 있다.
그 증거는 숫자로 이미 확인됐다. 한국의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3.5% 급증했다. AI 연산의 병목을 해결하는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상황이며, 범용 D램과 낸드 플래시 역시 AI 추론(Inference) 단계의 확산으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만나는 사람마다 메모리를 달라고 아우성”이라고 표현할 만큼 공급 부족은 현실이며, 이 구조적 불균형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은 계속해서 상향 조정되고 있고, 코스피 전체 주가수익비율(PER)은 7.5배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반쪽짜리 분석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코스피의 PER은 무려 14배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 역사상 최고 수준의 고평가 구간에 해당한다. 코스피 이익 증가분의 95%가 반도체 대표 기업들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나머지 기업들의 이익 증가분은 미미하다. 전체 시장은 저평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대감만으로 올라버린 고평가 종목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지수가 오른다고 해서 모든 배가 함께 뜨는 것은 아니다.
워렌 버핏은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지금의 시장을 두고 “카지노가 붙어 있는 교회 같다”는 인상적인 비유를 남겼다. 전통적인 가치투자와 단기 투기적 매매가 뒤섞인 지금 시장의 이중성을 꿰뚫고 있는 표현이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수익 인증 게시글이 넘쳐나고, 전업투자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과거 강세장의 말미마다 반복되어온 익숙한 풍경이다. 버핏의 경고를 조롱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냉정한 투자자라면 그 경고의 무게를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한다.
물론 필자는 여전히 코스피에 대해 낙관적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아직 진행 중이고, 정부의 밸류업 정책은 기업들의 주주환원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구조적인 AI 수요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있고 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AI 투자의 파고가 이를 압도하는 한 시장의 상승 방향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코스피 30년 평균 PER 9.8배를 적용하면 9000포인트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낙관론이 맹목적인 추격 매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수가 오른다고 모든 종목을 사도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옥석 가리기’다. 보유 중이거나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실제로 숫자로 증명된 기업인지, 아니면 시장의 분위기와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올라온 기업인지를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실적과 수주 없이 테마와 기대감만으로 상승한 기업들은 비중을 적절히 줄여 현금을 확보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반대로 반도체처럼 실적도 탄탄하고 여전히 저평가 구간에 있는 기업들은 PER 5배 수준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시장이 출렁일 때 오히려 비중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코스피 7000은 설레는 숫자이지만, 동시에 숫자가 주는 무게감도 상당하다. 투자자들은 지수의 상승이 실제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들의 실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는지를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오르는 시세에 현혹되어 냉정함을 잃는 순간, 시장은 무서운 얼굴을 드러낼 수 있다. 강세장일수록 더 정교하고 더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 코스피는 싸지만, 동시에 비싸기도 하다. 그 이중성을 직시하는 눈이야말로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투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