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일가는 어디에 살까. 흔히 부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답이 그려진다. 실제로 주요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 거주지를 들여다보면 주소가 몇 개 구로 또렷하게 몰리는 양상이 확인된다.
조사 대상 총수 일가 436명 가운데 409명, 비율로는 93.8%가 서울 거주로 17일 CEO스코어는 집계됐다. 서울 밖으로 나가면 숫자가 급격히 얕아진다. 경기도가 17명(3.9%)으로 뒤를 이었고, 해외 거주 4명(0.9%), 부산 2명(0.5%) 수준이었다. 인천·전북·대전·충북은 각각 1명(0.2%)씩으로 나타났다. ‘전국구’라기보다 ‘서울 한복판’에 가까운 지형이다.
서울 안에서도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용산구·강남구·서초구 3개 구에만 305명(69.9%)이 거주했다. 구별로는 용산구가 127명(29.1%)으로 가장 많고, 강남구 113명(25.9%), 서초구 65명(14.9%) 순이다. 한마디로 서울 3구가 재계의 생활권을 삼켰다.
특히 용산구의 존재감이 눈에 띈다. 용산구 안에서도 이태원동·한남동에 거주하는 사례가 100명(22.9%)으로 집계돼 ‘구 단위 집중’이 ‘동 단위 집중’으로 한 번 더 접히는 모습이다. 한남동이 대사관과 고급주택, 보안과 프라이버시가 강한 이미지로 상징된다면 이태원은 외국인 생활권과 접근성, 생활 편의가 결합된 동네로 꼽힌다. 조용해야 하지만 움직이기도 편해야 하는 그런 조건이 한 곳에 겹치면 주소는 모이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강북 부촌도 존재감을 보였다. 성북구 성북동 거주가 꾸준히 거론되며 ‘용산·강남’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부촌 축과 ‘성북동’ 같은 옛 부촌 이미지가 나란히 확인된다. 오래된 고급 주거지의 상징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비수도권은 희소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총수 일가는 10명 안팎으로 집계돼 대비가 뚜렷했다. 결국 거주지 선택에는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생활 인프라가 어디에 밀집해 있는지 그리고 교육·의료·업무 접근성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절약해주는지가 동시에 작동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통계는 재벌은 어디 사나라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도심의 권력 지도가 보인다”며 “돈은 넓게 퍼지기보다 자주 한곳에 눌러앉고 그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