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그사세’ 높은 분들의 부동산 내로남불

 지난 18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딸의 전세자금과 관련한 한 야당의원의 질의에 격분해 고성을 질러서다. 김 실장은 “내 가족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 꼭 딸을 거명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자 국회 운영위원장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실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 실장은 서울 서초구 서초래미안 아파트 전용면적 146㎡를 보유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2000년 김 실장이 지금은 금지된 재건축 입주권을 사들여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세는 30억원 안팎이다. 김 실장이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운 부동산 정책을 주도한 고위공직자임을 고려하면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정작 이날 김 실장을 강하게 비판한 야당의원은 익히 알려진 ‘부동산 부자’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해 22대 국회에서 새롭게 의원으로 선출된 147명의 신규 재산등록 내역을 공개한 결과, 해당 의원은 약 198억원가량의 강남구 대치·논현동 인근 토지와 건물을 보유하는 등 총 201억7736만원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김 실장을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최근 리더스인덱스가 선출·임명된 4급 이상 고위직 2581명의 가족 재산 공개 내역을 분석한 결과 48.8%가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했고 17.8%는 3채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군별 1인당 보유 주택 수를 보면 정부 고위관료가 1.89채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지자체장이 1.87채, 지방의회와 공공기관·국책 연구기관 공직자가 각 1.71채 수준이었다. 국회의원은 평균 1.41채를 보유했다. 그야말로 일반 국민들에겐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22대 국회의원이 보유한 주택 5채 중 1채꼴로 서울 강남 지역에 있고 다주택자도 20%(61명)에 달했다. 국회의원의 부동산 재산 평균은 19억5000만원 수준을 기록했다. 2024년 기준 국민 평균 부동산 재산이 4억2000만원가량임을 고려하면 약 4.6배 수준이라고 경실련은 설명했다. 경실련은 “공직자가 고가·다주택을 보유한 채로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를 주장하면 진정성과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이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 국민들은 미련 없이 지지를 거둔다. 일반 국민보다 훨씬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공직자들이 주도하는 부동산 정책은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정책 신뢰도를 높이고 부동산 정책을 주도하는 공직자들의 청렴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동산 토지신탁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에게 실거주용 1주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의 매각 혹은 신탁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부동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원천 차단하자는 게 제도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2020년 “여러 채의 집을 가진 공직자가 부동산 정책을 논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3년 전 첫 대선 출마 당시에는 “고위공직자가 집 2채 갖고 집값 내리겠다고 하면 누가 믿나”라며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과거 정당의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고 실제 법안 논의도 이뤄졌다. 하지만 매번 군불만 때고 실행 단계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여야는 반북되는 부동산 정책 불신 해소를 위해 하루빨리 제도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정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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