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통과에…재계는 ‘경영권 방어’ 목소리

주주 보호와 이사회 투명성 강화를 추구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평소 이를 반대해왔던 재계는 균형 잡힌 경영권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주도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그간 강하게 반대해온 재계가 반발과 함께 뒤늦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이 주주 보호와 이사회 투명성 강화를 위한 취지로 추진되는 것임에도 재계는 경영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여전히 내면서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회에 사외이사를 선임할 경우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특정 대주주가 이사회를 독식하는 폐단을 막고, 소수주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과거에는 이러한 3%룰이 사내이사에만 적용됐으나, 이제 사외이사까지 확대되면서 이사회 전반의 독립성과 균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을 포함한 재계 여러 기업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의 영향 및 대응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회사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 높이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개정안을 외부세력의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부추기는 규제로 규정하며 포이즌필(독약조항),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득권 대주주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더구나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을 요구하며 경영진이 손해를 끼쳐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면죄부를 달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은 경영권을 일정 부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들을 운용 중이나, 한국은 이들 제도를 아직 도입하지 않고 있다. 재계는 이러한 점을 들어 “경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경영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소수주주와 외부 감시로부터 자유롭던 폐쇄적 지배구조의 종말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재벌 중심 대기업 구조에서 이사회는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안은 오히려 정상적인 자본시장 질서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외부 견제와 이사회 자율성이 필수”라며 “이번 상법 개정안은 불완전하더라도 그 방향성은 옳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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