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이 신재생에너지 분야 절대 강자인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자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최근 공격적인 투자를 앞세워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블룸버그NEF 분석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해 에너지 전환 부문에 투자한 금액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8164억 달러(약 1111조원)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태양광, 풍력, 수소 에너지, 배터리 저장 기술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23년 말 청정에너지 6대 핵심 기술(태양광·풍력·전기차·배터리·전해조·히트펌프) 현황에서 중국의 글로벌 점유율(모든 나라의 생산능력 가운데 중국의 비율)이 70%(제조 부가가치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에너지 안보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장악력 확대로 주요 국가들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미국, 일본, EU 등은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며 중국 추격에 나섰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2030년까지 미국의 탄소 배출량을 2005년 수준 대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탈탄소화 목표 동참과 함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기후공시 의무화법 등을 속속 도입하면서 자국 산업 성장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 속도전을 치렀다. 미국은 2022년 태양광과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비중이 21%를 기록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처음으로 석탄 발전량(20%)을 추월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신재생에너지 산업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생산을 촉진하는 반면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의 예산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 또 최근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폐지,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종료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해 에너지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래 산업에 피해를 주는 미친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트럼프 행정부도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굴기에는 견제구를 날렸다. 미국 내 기업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를 지으면서 중국산 기술이나 부품 등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일본은 2040년 전력 구성에서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40%~5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는 태양광과 해상 풍력 등의 발전 설비 도입 확대를 통해 현재 2030년 목표인 36%~38%보다 높인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전력원 구성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율은 22.9%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재생에너지 증가율을 높이고자 해상 풍력 투자를 촉진하는 제도 개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중국의 태양광 기술에 맞설 차세대 태양광 패널 선택에도 집중하고 있다. 기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없는 장소에도 설치 가능한 차세대 태양전지 ‘페로브스카이트’의 도입 확대에 나서는 중이다. 일본은 2030년까지 공공 건물, 기차역과 학교 등에서 휘어지기도 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패널을 채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기업의 재생에너지 투자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20조엔(약 183조원)의 기후 전환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채권 발행을 통해 얻은 자금은 일본의 순배출 제로 전환을 가속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기술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EU는 2023년 ‘재생 에너지 지침(RED)’을 개정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2.5%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괄적 추진 방안을 담은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의 일환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EU 전체 배출량의 75%를 차지한다”며 “따라서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줄이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경제 전반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운송부문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최소 29%로 늘리거나 운송부문의 탄소집약도를 최소 13% 낮춰야 한다. 산업부문은 2030년까지 매년 재생에너지 사용을 1.6%씩 늘려야 한다. 여기에 산업현장에서 쓰는 수소의 42%를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로 채워야 한다. 그린수소 사용 비중은 2035년 6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올해 태양광 70GW(기가와트), 풍력 19GW 등 총 89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4년(태양광 65.5GW, 풍력 12.9GW) 대비 약 13.5% 증가한 수치로 이는 단일 연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