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정부는 국민이 집을 가지지 않길 원하는 걸까?

고강도 대출규제·갭투자 금지로 ‘내 집 마련’ 극히 힘들어져
비현실적인 대책으로 부작용만 유발…정책 신뢰 추락
“정부는 주택 소유보다 월세·임대 선호”…‘삼호어묵’ 글 인기

안재성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기자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꼬집는 인터넷 논객, 닉네임 ‘삼호어묵’의 글이 핫하다. 삼호어묵은 네이버 부동산까페 등에 총 16회의 글을 올렸는데, 타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SNS) 등으로도 퍼지면서 회당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다.

 

쉽고 친근한 문체나 재미있는 내용도 거론되지만, 역시 삼호어묵의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게 인기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삼호어묵의 글에서 정부 비판은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으며, 결국 핵심은 딱 세 가지다.

 

첫째, 정부는 국민이 집을 갖기를 않길 원한다. 둘째, 정부는 국민이 월세나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걸 선호한다. 셋째, 정부는 집값 안정화에 관심이 없으며, 오직 증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간 정부의 발표와 완전히 상반될 뿐 아니라 “정부가 정말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할까?” 싶을 만큼 황당한 내용이다. 실제로 음모론이라 해도 될 만큼 삼호어묵 주장의 근거는 미약하다.

 

그럼에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것은 그만큼 정부의 정책이 집값 안정화에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정책 신뢰가 추락한 때문이다. 오죽하면 “정부는 국민이 집을 못 가지도록 방해하는 게 목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을까.

 

부동산은 결국 상품이며,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집값 안정화를 위한 공급 측면의 대책으로는 우선 재건축·재개발·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해 서울 강남권 등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요지에 고급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수도권 요지 외 지역의 교육·문화·의료 등의 인프라를 개선해 지역 간 인프라 격차를 줄이는 것도 강남권 아파트만 지나치게 폭등하는 걸 막는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공급 측면의 대책은 쏙 빠져 있다. 오히려 재건축·재개발 규제 강화, 주택임대사업자 장려 등 공급을 더 악화시키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

 

대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규제 강화, 갭투자 금지, 일시적 1가구 2주택에 대한 규제 강화, 주택 공시가격 인상, 종합부동산세율과 취득세율 및 양도소득세율 인상 등 수요 측면을 억누르는 데에만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정책으로 다주택자들도 괴롭지만, 가장 힘든 건 ‘내 집 마련’을 원하는 무주택자와 상급지로의 이동을 원하는 1주택자다.

 

다주택자들은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최소한 그들에게는 수십억 혹은 100억 이상의 자산이 있다. 다주택자들은 임차 주택의 전세금을 크게 올리거나 월세 전환을 통해 종부세 등의 재원을 조달하는 게 가능하다. 여차하면 소유 주택 중 인기가 낮은 곳부터 골라 팔아 세금 부담을 낮추고, 현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주택자나 상급지로의 이동을 원하는 1주택자는 강력한 규제에 무척 고통스럽다. 현재 규제지역의 LTV는 겨우 40%다. 그나마도 시가 9억원 이상의 주택을 매수할 경우에는 20%로, 시가 15억원 이상은 0%로 축소된다.

 

시가 8억원의 주택을 매수할 때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이 최대 3억200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나머지 4억8000만원은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시가 10억원 이상의 주택을 매수한다면, 현금으로 조달해야 하는 자금이 8억원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다.

 

‘6.17 대책’으로 갭투자도 불가능해졌다. 집을 구매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소비자는 해당 주택에 6개월 내로 입주해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처럼 매매가 17억5000만원의 아파트를 12억원 전세를 끼고 사려면, 5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필요자금을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로 조달할 경우 즉시 대출이 회수된다.

 

일단 다수의 소비자들이 주택 매수 자금 마련을 위해 신용대출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정부 규제의 손길이 뻗쳤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주식, 주택 매매에 활용된 신용대출은 앞으로 시장 불안 시 금융사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규제 강화를 시사했다.

 

때문에 애가 탄 소비자들은 캐피탈사의 ‘아파트론’, 대부업체를 낀 P2P금융의 주택담보대출 등 고금리대출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강화된 대출규제 탓에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만 재미를 보는 셈이다.

 

이처럼 ‘금수저’ 외에는 내 집을 사기가 참으로 힘들어졌다. 1주택자가 점점 자라는 자녀를 위해 집 평수를 늘리거나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기도 어려워졌다. 지금 임차인인 소비자가 나중을 위해 일단 전세를 끼고 내 집을 사두는 전략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다주택자도 괴롭다고는 하나 그들의 고통은 내 집을 가지고 싶은 무주택자와 비견할 바가 아니다.

 

이를 통해 집값이라도 안정화됐다면 모를까, 현실은 정반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간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6억600만원에서 9억2000만원으로 52%나 급등했다. 이는 중위값이 13% 떨어졌던 ‘이명박 정부’나 27% 상승에 머물렀던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이다.

 

그 후로도 집값 상승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 감정원에 따르면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1% 올라 1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둔 유일한 분야는 세금 증대뿐이었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집값이 곧 안정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의 8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 125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 투자)’로라도 집을 사려고 아우성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가운데 정부와 여권 관계자들의 해괴한 언급은 “정부는 국민이 집을 가지는 걸 싫어한다”는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친문재인·친조국’을 내세운 열린민주당의 김진애 의원은 국회에서 “집값 올라도 상관없으니 세금만 많이 내시라”고 발언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열린민주당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에게서도 큰 박수를 받았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자신의 SNS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고, 매우 정상적인 흐름”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산층까지 살고 싶은 공공임대주택을 만들겠다”고 밝혀 “중산층도 임대주택에 사는 나라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설마 정부가 국민이 집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게 목적이란 음모론만은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비판이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 안정화를 원한다면, 그간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한국경제학회 설문조사에서 경제 전문가의 76%가 집값 폭등의 주 원인으로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꼽았다. 더 이상 경제학원론과 싸우는 듯한, 비현실적인 대책은 안 된다. 시장과 동떨어진 정책은 시장의 더 큰 반발만 부를 뿐이다.

 

특히 공급을 대대적으로 늘리면서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를 꾀하되 과도한 수요 억제는 지양해야 한다. 수요 측면을 억누를수록 무주택자들만 힘들어진다.

 

정치와 행정은 이념에 치우치기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 내 집을 가지고 싶은 욕망, 비싸더라도 좋은 위치의 집을 사고 싶은 욕망, 상급지로 이동하고 싶은 욕망은 모두 인정해야 한다.

 

강남권 아파트 폭등이 염려된다면, 다른 지역의 인프라를 강남 수준으로 개선해야지 강남권 아파트를 사지 못하게 억누르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과 대치되는 정책은 결국 고금리대출의 증가 등 부작용만 부를 뿐이다.

 

정부가 끝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심 싸움’에만 골몰한다면, 국민의 정책 신뢰 역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국민이 집을 가지는 걸 싫어한다”는 명제를 믿는 국민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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