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세계 경제 뒤흔드는 '그들만의 언어'

 

김민지 경제부장
김민지 경제부장

 

“언어는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이 최근 세계적 공연예술 축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현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올해 축제의 초청 언어로 한국어가 선정되면서 한 작가는 이곳을 찾았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도 하고, 고백도 하며, 진실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언어에서 문학, 연극, 노래 등이 생겨난다”고 한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언어의 힘은 강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언어는 우리의 감각을 채워주고, 때로는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 섬세한 언어를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일은, 철학적 가치이자 특별한 영감이다.  

 

문학 뿐일까.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앙은행에서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새로운 알파벳이나 형상문자는 없지만, 대신 공통된 세계관을 보인다. 

 

특히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전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  

 

연준 의장 중에는 세계 경제사에 여러 기록을 남긴 인물들이 꽤 있다. 전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여러 측면에서 이례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의 임기 8년은, 그야말로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는 팬데믹 종료 이후 나타난 2021년 물가 상승 조짐에 대해 “일시적(transitory) 현상”이라며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 오판으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

 

결국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연준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고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섰다.

 

파월 자신도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퇴역시킬 때가 됐다”며 실수를 사실상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파월이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미국경제 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경착륙의 공포에 시달리며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시장에서는 한국은행 총재의 화법이 자주 거론된다. 한은 금통위 결과보다 기자회견 중 총재의 뉘앙스가 더 큰 가격 변수가 되고 있어서다. 

 

한은에 따르면 유각준 서울대 교수와 조두연 성균관대 교수 연구팀은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석:감성 분석을 중심으로’ 논문을 통해 이성태·이주열·이창용 전 총재 재임기 기준금리 발표 직후 기자간담회 중 채권시장 변동성이 평상시보다 7~15배 커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김중수 전 총재 때는 변동성이 4.2배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창용 전 총재의 기자간담회 발언은 전임 총재들과 비교했을 때, 금융시장에 더 큰 파급력을 가져온 것으로 조사됐다.

 

그의 어조가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인지,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인지에 따라 채권시장이 크게 출렁인 것이다. 이 총재는 명확하고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신현송 현 총재의 언어에 쏠린다. 한은이 3년 6개월 만에 통화긴축으로 방향을 틀면서 기준금리 3%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신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까지 안정적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대응하겠다”며 추가 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상 자체보다 추가 인상 여부와 횟수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은 총재에게 참 많은 것을 바란다. 물가도 잡아야 하고, 환율도 안정시켜야 한다. 그뿐 인가. 부동산과 주식시장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시장의 기대를 골고루 살피는 게 더 중요한 임무다. 천금과 같은 그들의 언어가 경제 전반으로 퍼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할 때다. 

 

김민지 경제부장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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