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 시대 2030의 자화상] [르포] ‘갓생’ 대신 ‘생존’…거지맵에 의지하고 투잡으로 버틴다

30대 직장인 윤모씨가 본업을 마친 뒤 배달 콜을 확인하며 운행 준비를 하고 있다. 윤씨는 직장 근무와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사진=주다솔 기자
30대 직장인 윤모씨가 본업을 마친 뒤 배달 콜을 확인하며 운행 준비를 하고 있다. 윤씨는 직장 근무와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사진=주다솔 기자

“요즘 평생직장이 어디 있나요.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죠.”

 

서울의 한 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30대 직장인 윤모씨는 퇴근 후 다시 출근을 한다. 노트북을 덮자마자 그가 집어 든 것은 코딩 서적이 아닌 배달용 헬멧.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윤씨의 일과는 밤 11시가 돼서야 끝이 난다.

 

윤씨는 “예전엔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배달 한 건이라도 더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내 집 마련은커녕 치솟는 월세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는 세대에게 자기계발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과거에는 ‘투잡’을 한다고 하면 생계가 어렵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했지만, 이제는 풍경이 달라졌다.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윤씨처럼 퇴근 후 시간을 쪼개 쓰는 직장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윤씨가 퇴근 후 짬짬이 오토바이에 오르는 것만으로 손에 쥐는 부수입은 한달에 약 50만원 선. 윤씨는 “부수입이 꽤 쏠쏠하다 보니 처음엔 가벼운 부업으로 시작했다가 아예 배달 전업으로 전향한 직장인들도 심심찮게 보인다”고 귀띔했다.

 

최근 얼어붙은 업계 분위기에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윤씨. 그는 “요즘 평생직장이 어디 있느냐”며  “AI가 코딩까지 대신하는 마당에 개발자라고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시대도 지난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대 직장인 이모씨가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매장에 입고된 물류를 정리하고 있다. 이씨는 투잡으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진=주다솔 기자
20대 직장인 이모씨가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매장에 입고된 물류를 정리하고 있다. 이씨는 투잡으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진=주다솔 기자

◆‘부캐’는 옛말, 이제는 실전 ‘생존’… 평일엔 오피스, 주말엔 편의점

 

비단 윤씨뿐만 아니라, 본업 외 추가 소득을 노린 ‘주말 투잡족’도 이미 우리 주변의 흔한 풍경이 됐다. 휴식을 반납하고 편의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식이다. 불과 1~2년 전 2030 세대의 화두였던 ‘갓생’(God+生)이 어느덧 ‘생존’으로 치환된 결과다.  

 

실제로 중소기업 20대 직장인 박씨는 평일에는 정장을, 주말에는 편의점 조끼를 입고 근무한다. 박씨는 “주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치솟는 물가를 보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편의점 업무는 정해진 시간에 확실한 시급도 보장되기에 주말을 반납하고서라도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앞에 위치한 한 돈까스집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곳은 ‘거지맵’에서 가성비 1위 식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진=주다솔 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앞에 위치한 한 돈까스집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곳은 ‘거지맵’에서 가성비 1위 식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진=주다솔 기자

 

◆1만원으로 밥 한 끼 힘든 시대, ‘거지맵’ 웨이팅은 필수

 

지출을 줄이려는 ‘생존형 소비’ 모습도 뚜렷하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는 저가 식당과 편의점 할인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거지맵’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5000~6000원대로 한 끼 해결이 가능한 식당을 정리한 이 지도는 청년들의 ‘생존 가이드’로 통한다.

 

그중에서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 위치한 한 돈까스집은 단연 화제다. 돈까스 한 접시에 단돈 4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 덕분에 거지맵 이용자들 사이에서 가성비 1위 식당으로 꼽힌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임에도 식당 앞은 대기 인파로 붐볐다. 줄 사이에는 인근 대학생뿐만 아니라 원거리에서 찾아온 일반인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기 줄에서 만난 취준생 김씨는 “요즘 편의점 도시락도 5000원이 넘는데 여기서 따뜻한 돈까스를 먹는 게 훨씬 이득”이라며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이런 성지를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 개인서비스(외식비) 가격 현황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의 김치찌개 백반 평균가는 8654원이다. 비빔밥(1만161원)과 냉면(1만2538원)은 이미 1만원 선을 훌쩍 넘겼다. 만원 한 장으로 식사 해결이 어려운 고물가 상황에서 4000원짜리 식당은 청년들에게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실질적인 ‘생계 방어선’이자 하나의 생존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모습이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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