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고물가·고유가 등 이른바 3고(高) 시대. 2030 청년들에게 소비는 더 이상 과시의 수단이 아니다. MZ세대는 오히려 자신들을 ‘거지’라 지칭하며 ‘무지출 챌린지’ 같은 극한의 절약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
◆‘갓성비’ 식당을 찾아라…생존 지도 ‘거지맵’
과거 맛집 지도가 ‘분위기’와 ‘맛’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최근 MZ세대들의 필수 앱으로 등극한 ‘거지맵’의 기준은 오직 하나, 가격이다. 거지맵은 이용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오픈형 지도 서비스로, 1만원 이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가성비 식당만을 선별해 보여준다.
일반식당 뿐만 아니라 외부인 이용이 가능한 대학교 구내식당, 관공서 식당, 기사식당, 노인복지관 식당 등 일반적인 포털 검색으로는 찾기 힘든 초저가 식당 정보를 상세히 제공한다. 편의점의 실시간 이벤트도 공유한다. ‘1+1’이나 ‘2+1’ 행사 정보, 마감 직전의 타임 세일 정보를 지도로 표시해 사용자가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깝게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을 안내한다.
특히 학생과 사회초년생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20일 웹사이트로 시작된 이 서비스는 출시 18일 만인 지난 7일 누적 이용자 수는 94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최대 방문자는 25만명 수준이다. 10일에는 앱으로도 출시돼 엿새 만에 다운로드 2만1500회를 돌파했다.
이러한 거지맵의 유행은 최근 ‘런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급등한 외식 물가에 대한 MZ세대의 능동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저렴한 식당을 찾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면, 이제는 거지맵을 활용해 합리적으로 지출을 관리하는 것을 ‘똑똑한 소비’이자 ‘놀이’로 인식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살벌하고 유쾌한 ‘거지방’도 있다…“커피는 사치, 햇빛은 공짜”
SNS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거지방’은 ‘무지출 챌린지’의 전초기지다. 이곳의 규칙은 단순하다. 자신의 지출 내역을 가계부 형식으로 인증하며 서로의 소비를 엄격하게 평가한다. 한 참여자가 “너무 더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4500원을 썼다”고 올리면, 다른 이들은 즉각 “사치다. 탕비실 커피 믹스를 타서 얼음컵에 넣어라”, “햇빛은 공짜인데 왜 유료 음료를 마시느냐”며 매서운 질타를 쏟아낸다. 여기에 “이번 달은 숨만 쉬고 사세요” 같은 극단적인 농담은 이곳에서 칭찬으로 통한다.
하루 동안 단 1원도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에 성공하면, 가계부 앱의 ‘0원’ 화면을 캡처해 인증샷을 올린다. 이를 위해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퇴근은 도보로 하며, 생필품은 앱테크로 모은 포인트로 결제하는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가짜 배달 앱도 등장했다. ‘음식만안와요’는 기존 배달 플랫폼을 그대로 구현했다. 사용 방법은 먹고 싶은 메뉴를 장바구니에 담고 배달 주소를 입력한 뒤 ‘주문하기’를 누른다. 빠른 배달과 느린 배달 중 선택할 수 있고, 배달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도 표시된다. 배달이 완료되면 “2500칼로리 아끼셨어요!”라는 칭찬 메시지가 뜬다. 배달 음식을 시키고 싶을 때 느끼는 보상 회로를 ‘돈을 아꼈다’는 성취감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티끌 모아 태산…‘소액 앱테크’ 일상화
지출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투리 돈을 굴리는 소액 앱테크도 활발하다. 걷기만 해도 포인트가 쌓이는 만보기 앱이나 설문조사 참여 등을 통해 하루 수백원에서 수천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과거의 앱테크가 단순히 광고를 시청하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게임 요소와 사회적 연대가 결합된 방식으로 진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만보기형 앱이다. 특정 지점을 방문하면 추가 보상을 주는 ‘보물찾기’ 기능이 거지맵과 연동돼 필수 코스로 등극했다. 퀴즈 및 정답 찾기형은 특정 시간에 열리는 퀴즈를 맞히면 포인트를 받는다. 거지방 참여자들은 실시간으로 정답을 공유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공동 구매형은 여러 명이 모여 특정 미션을 수행하거나, 공동 구매 링크를 클릭할 때마다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이는 MZ들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아끼고 번다’는 연대감을 형성하게 한다.
MZ들은 앱테크로 모은 소액 포인트를 단순히 적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생활비 절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 달간 모은 포인트로 편의점이나 카페 기프티콘을 교환한다. 10원 단위의 포인트도 무시하지 않는다. 배달비 결제 시 차감하거나 통신비 자동이체에 보태는 방식이다.
증권 앱에서는 소액 투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결제하고 남은 잔돈을 미리 설정한 펀드나 주식에 자동으로 투자하거나, 비싼 해외 우량주를 1000원 단위로 쪼개서 구매하는 ‘소수점 투자’는 자본금이 부족한 MZ들의 투자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