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쿠퍼티노의 허름한 차고에서 탄생한 애플이 4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애플은 3조 6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난 기업으로 성장해 글로벌 IT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과 중국 간 관계는 자못 흥미롭다. 그간 애플은 거대한 소비시장이자, 낮은 단가로도 탁월한 제조 능력을 보유한 중국을 지렛대 삼아 성장했다. 2011년 글로벌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후 한동안 이 지위를 놓지 않았던 것도 중국 덕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났다. 이젠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첨단 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까지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애플이 이식한 기술과 제조업 노하우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언뜻 애플과 중국은 서로 윈-윈(win-win)한 듯하다. 하지만 애플로선 지나친 중국 의존도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수출통제, 관세 등 미·중 갈등 국면에 그대로 노출된 게 단적인 예다. 그래서 중국인의 애국 소비 흐름이 격화할 때마다 애플은 홍역을 앓는다. 이뿐만 아니다. 애플로선 중국에 구축된 제조업 클러스터를 대체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베트남, 인도에선 중국만큼의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10억 소비시장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앱스토어 수수료 인하 등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 공세에 애플이 대체로 협조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애플이 중국이란 덫에 걸린 셈이다.
◆ 중국 찾은 팀 쿡…연이은 친중 메시지
최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행보를 보면 애플이 얼마나 중국을 전략적으로 중요시하는지 잘 드러난다. 쿡 CEO는 지난달 18일 중국 청두를 방문해 애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청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행사 개최지다.
그는 같은 달 22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제15회 중국고위급발전포럼(중국발전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최근 10년 새 이 포럼에 7회나 참석했다. 코로나19로 포럼이 열리지 않았거나 온라인으로만 개최됐던 때를 제외하곤 사실상 매해 베이징을 찾은 것이다.
쿡 CEO는 단순히 행사장에 얼굴만 비친 게 아니다. 첫 중국발전포럼에 참석했던 2017년엔 기조연설자로서 세계화의 긍정적 영향을 강조했다.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1기의 정책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중국에서 낸 것이다. 이듬해 미·중 갈등이 격화하던 시기에서도 기조연설자로 나서 이를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쿡 CEO는 팬데믹 후 처음으로 대면 방식으로 열린 2023년 중국발전포럼 기조연설에서 “애플과 중국은 공생적 관계”라며 또다시 중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올해 포럼에서도 기조연설자로 나서 “애플과 중국이 친환경 개발·탄소중립이라는 공통 목표를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를 향한 협력 의지를 지속해서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 ‘붉은 공급망’…애플 상위 공급사 10곳 중 8곳은 중국기업
이러한 발언들은 애플의 대중 전략을 잘 드러낸다. 애플은 생산, 공급망, 매출 모두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서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애플의 글로벌 공급망 상위 100대 공급업체 중 80개가 중국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정저우, 광둥, 충칭, 상하이, 장수, 안후이, 쓰촨 등을 비롯해 내몽골자지구까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애플의 대표 브랜드인 아이폰 생산의 무려 80%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기도 하다. 2026 회계연도 1분기 애플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중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 매출은 38%나 급증한 255억 달러를 기록했다. 애플은 미·중 갈등 국면, 화웨이 등 현지 경쟁사들의 약진 등 악재를 딛고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21.8%로 1위를 찍었다.
중국 정부의 태도는 어떠할까.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연이은 공세에도 철저히 실리만 따진다. 쿡 CEO를 대형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우대한 건 중국이 애플을 서방 기업 중 가장 우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신호를 보낸 셈이다. 중국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애플을 활용해 개방, 자유, 협력 등의 가치를 철저히 부각한다.
◆ ‘양보’ 종용하는 중국…찍소리 못하는 애플?
중국은 애플의 핵심 공급망으로서만 기능하는 건 아니다. 애플을 향해 강온양면 전략을 편다. 특히 폐쇄적인 애플 생태계를 향해 변화를 종용한다. 최근 인민일보는 “애플이 중국 사용자와 개발자들이 여전히 타사 결제 시스템과 대체 앱 배포 플랫폼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하다”면서 “중국의 규제 당국이 애플 생태계 개방을 지속해서 압박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애플의 앱 수수료 정책과 외부 결제 서비스 금지 조치를 조사했다.
중국이 애플을 몰아붙인 건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3월 15일 ‘소비자의 날’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의 관영 CCTV 방송은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애플이 문제가 발생한 기기를 교체해주는 과정에서 중국 소비자에게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게 방송의 골자였다. 하지만 아이폰4 대성공 후 중국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던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종의 ‘애플 길들이기’다. 애플은 당시 중국어 사과문을 내며 사태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쿡 CEO는 중국에 줄곧 유화적인 제스처를 내보낸다. 애플은 지난 15일 쿡 CEO의 방중에 앞서 중국 내 앱스토어의 인앱 구매 및 유료 거래 수수료를 30%에서 25%로 인하하고, 앱개발자 등에 대한 수수료도 15%에서 12%로 낮췄다. 이러한 조처들은 중국 당국과의 협의에 따라 이뤄졌다고 애플은 밝혔다. 각종 서비스 검열도 참아낸다. 애플의 서비스부문에서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애플 TV의 경우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못한다. ‘시리’ 역시 ‘천안문 사태’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 ‘끝낼 수 없는’ 동거 언제까지?
중국은 이미 주요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장악했다. ‘중국제조 2025’ 전략의 주요 업종에 해당하는 로봇,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첨단제조 산업은 2015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화웨이, 바이두,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 기업이 자체 AI칩의 설계·활용을 확대하면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애플 인 차이나’의 저자 패트릭 맥기는 “애플은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가장 최첨단의 설계, 공정, 기술적 노하우를 가져와 중국에서 이를 대규모로 구현했다”면서 "중국이 첨단산업과 같은 복잡한 분야에서 성장한 건 애플이 이를 가르쳐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애플의 핵심 제품군인 스마트폰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화웨이는 아이폰과 같은 프리미엄 부문에서 애플을 위협한다. 쿡 CEO는 2018년 11월 최고경영진 회의에서 “화웨이의 신형 메이트가 걱정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불과 이듬해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은 애플을 뛰어넘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산업 육성책에 더해 애플이 전수한 첨단산업의 기술적 노하우가 더해지며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세계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칩 워’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자에게 허를 찔렸다”고 평하기도 했다. 창립 반세기를 맞은 애플이 향후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이어갈지 이목이 쏠린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