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팀 박기자의 영수증] 20년 전 청량리역… 추억을 수집하는 법

-코레일 ‘역명판 교통카드’ 내돈내산

세는나이 마흔을 맞이한 1987년생이자 스무 살부터 자취 중인 미혼 남성인 동시에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산업부의 유통팀 소속 기자의 지난주 영수증을 통해 최근 트렌드를 알아봅니다. <편집자 주>

 

청량리역을 배경으로 청량리역 교통카드와 영수증 사진을 찍었다. 박재림 기자


20년 전 봄, 그러니까 2006년 3월 청량리역 앞에서 엄마 잃은 아이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동기 엠티날이었고, 다른 동기들이 탑승한 대성리행 무궁화호 열차를 보낸 직후였다.

 

늦잠을 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설렌 마음에 알람보다 더 일찍 눈을 뜨고 가장 아끼는 옷을 챙겨 입고 일찌감치 나선 길이었다. 선배들이 청량리역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시간 전에 출발한 것이었다.

 

다만 지방 소도시에 살다가 20살이 되어 처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신입생이 그보다 며칠 전 과대가 공지한, ‘지하 청량리역’이 아닌 ‘지상 청량리역’으로 와야 한다는 말을 너무 새겨들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직 ‘하철이’ 앱이 나오지 않은 시기였고, 그래서 지갑 속에 항상 넣고 다니던 종이로 된 미니 지하철 노선도가 없으면 혼자서 낯선 곳을 찾아가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뚫어져라 바라본 뒤 ‘1호선 청량리역’이 아닌 ‘경의중앙선 청량리역’으로 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지했다.

 

그때는 몰랐다. 경의중앙선은 배차 간격이 일반 지하철의 5배 정도라는 걸. 도통 오지 않는 경의중앙선 열차를 15분 이상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이 세상이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청량리역에 도착해 타야할 기차가 이미 떠났음을 확인할 때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또한 곧 알게 됐다. 지하 청량리역에서 지상 청량리역까지는 걸어서 3분 거리라는 걸. 처음부터 1호선 청량리역으로 왔으면 진즉에 도착해 동기들과 함께 기차를 탈 수 있었다는 걸.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지난 5일 특별한 교통카드를 출시했다. 전국 30개 역의 실제 역명판과 똑같이 디자인을 한 제품으로, 해당 역 내부에 있는 스토리웨이에서 구매할 수 있다. 스토리웨이는 코레일 유통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다.

 

역명판으로 디자인 된 코레일 교통카드. 한국철도공사 제공

 

독특한 것은 오직 해당 역의 스토리웨이에서만 그 역명판이 담긴 제품을 판다는 점. 서울역 교통카드는 서울역에서만, 부산역 교통카드는 부산역에서만, 동대구역 교통카드는 동대구역에서만, 목포역 교통카드는 목포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특별한 교통카드 시리즈 출시 소식에 청량리역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20년 전 그때 그 추억 덕분이었다. 마침 어머니의 생신이라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와야 해서 청량리역을 찾았는데 그 교통카드는 출발 날에도, 도착 날에도 매진이라고 해 구하지 못했다.

 

한정 수량이 아니라 상시 판매 형태로 물량이 풀렸음에도 출시 첫날부터 여러 역에서 품절이 되고 웃돈을 얹은 중고거래까지 이뤄진다더니 과연 그 열풍이 대단하구나 실감했다.

 

언제쯤 다시 입고가 되는지를 스토리웨이 직원에게 물었더니 12일에 들어온다고 해서 이날 짬을 내서 굳이 청량리역을 방문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청량리역에 얽힌 아련한 옛 추억을 4000원에 산 거라면 수지맞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직업 특성상, 또 개인적인 취미생활 등으로 지방을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자주 찾은 역은 자주 찾는 대로, 처음 가는 역은 처음 가는 대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해당 역의 교통카드를 수집하게 될 것만 같다.

 

사실 청량리역 교통카드가 품절돼 구하지 못한 10일, 오기가 생겨 서울역을 찾아 서울역 교통카드를 미리 구매했다. 박재림 기자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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