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은행이 韓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려면

 흔히 금융은 윤활유에 비교된다. 사회 곳곳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 활동이 잘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금융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한다. 또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에게 금융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재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최근 정부가 금융권에 요구하는 생산적 금융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생산적 금융으로 대전환 추진을 발표하며 “한국 경제가 정체와 재도약의 변곡점에 있는 만큼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금융이 저성장·양극화 등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장을 주도해 재도약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위해 은행권의 역할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은행권 투자 여력을 최대 31조6000억원 확보하기 위한 개선안으로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RW) 하한을 상향 조정했다. 이와 함께 기업대출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의 비상장 주식 보유 관련 기준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 맞춰 완화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부는 150조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하고 범부처 역량을 총동원할 방침이다. 이 중 자금 절반을 민간에서 조달하기로 했는데, 시중은행이 상당한 부담을 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은행을 둘러싼 정부의 압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사 수익금이 1조원을 초과할 경우 기존 0.5%를 부과하던 교육세율을 1%로 2배 인상하는 교육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 은행이 약 7500건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자료를 수년간 공유하며 대출 한도를 담합했다고 보고 1조~2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따른 과징금을 2조~8조원 부과한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륜차에서 윤활유에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면 유막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파괴될 수 있다. 이때 금속 표면이 직접 맞닿게 되며 그 결과 마찰과 마모가 급격히 증가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외부 압력이 높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은행권을 향해 잇따라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벌어들인 이익만큼 사회에 환원하라’는 의미다.

 

 문제는 속도와 강도다. 현재 금리 인하기로 은행권은 이자이익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국면에 있다. 여기에 세 부담과 자본규제가 동시에 강화되면 대출 여력은 줄어들고 은행들은 더욱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인터뷰한 한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에 자금을 내라하는 것은 관치금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이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인·허가적인 인센티브를 주거나 아니면은 적극적으로 상생금융하는 은행에 유리한 혜택을 주어 자연스럽게 상생금융으로 가도록 유인할 필요가 있다”며 “너무 강압적으로 이렇게 자금 출연을 권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너무 큰 압박만 가할 경우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의 취지가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생산적 금융 확대라면 규제 강화만큼 은행들이 안심하고 투자·대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압박과 격려, 규제와 유인책 사이의 정교한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은행이 원활히 작동해야 금융 시스템도 제대로 굴러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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