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다음달 1일 모회사에 흡수합병된다. 2019년 신개념 자동차보험사란 타이틀을 앞세워 출범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좀처럼 적자 경영에서 벗어나질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24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디지털 전업사(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캐롯손해보험·카카오페이손해보험) 세 곳 가운데 한 곳이 사라지는 건 업계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캐롯손보의 사례는 우리나라 디지털 보험시장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디지털 보험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이유는 수익성이 낮은 소액 단기보험이 주력 상품인데다 판매채널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보험사들은 보험업법령에 따라 총보험계약건수 및 수입보험료의 90% 이상을 전화, 우편, 컴퓨터통신 등을 이용해 모집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비대면 방식으로 수익성이 높은 장기상품을 팔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짧으면 5년, 길면 20년간 보험료를 내야 하는 장기상품을 비대면으로 가입하기란 쉽지 않다. 비갱신으로 보험료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1달에 5만원만 잡아도 1년이면 60만원, 20년이면 1200만원짜리 상품인 까닭이다.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층이 스마트폰 앱으로 보험을 가입하기란 더더욱 힘들다. 규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차원에서 디지털로 보험 가입을 요청하는 고객들에 한해 아웃바운드를 가능케 해달라는 업계의 요구가 있어 왔지만 기존 보험사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에선 시장점유율 0.1%를 놓고도 업체들 간 심한 견제가 오간다고 한다.
지급여력제도인 킥스(K-ICS)도 디지털 보험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회사에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시에도 보험계약자에 대한 지급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다. 문제는 디지털 보험사의 혁신적 사업 시도들이 정작 킥스 비율에는 긍정적으로 반영이 안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장기상품으로 수익을 보는 대형 보험사와 단기 미니보험을 취급하는 소형 디지털 보험사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게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이유들이다.
디지털 보험사들도 이같은 제약을 모르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주력상품으로 빠르게 고객 풀을 넓혀 그 안에서 크로스셀링으로 장기보험도 판매할 복안이었지만 기대 만큼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지 못했다.
물론 보험상품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불완전 판매 등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 규제 문턱을 쉽사리 낮출 수 없는 구조적 한계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관계당국에서 디지털 보험사 인가를 내줬던 이유에는 이들이 시장에서 기존 보험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4050 세대들도 모바일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소비자들도 접근성과 편의성, 합리성이 있는 디지털 보험상품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페이손보의 해외여행보험이 출시 2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 400만명을 넘긴 건 디지털 보험업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디지털 보험업계에서 흑자 전환 사례가 나온다면 기존 보험사들이 디지털 보험 분야를 더 키우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전업사가 파는 디지털 보험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날이 올 지 모른다.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면서도 이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해법이 더 늦기 전에 나와야 한다.
경제부 노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