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훈(사진) 산업은행 회장이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지원 강화를 위해선 현 30조원인 산은의 법정자본금을 60조원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은 본점의 지방이전을 두고선 산은법 개정 이전이라도 실질적으로 이전 효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강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 일정에 맞게 빈틈없는 금융지원을 할 수 있도록 산은 자체적으로 반도체 초격차 지원 프로그램을 3년간 15조원 규모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반도체 지원과 관련해 산은 출자를 통해 17조원의 자금공급 방안을 발표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산은은 정부 정책의 후속 조처로서 제조시설, 팹리스, 후공정, 반도체 장비 등 반도체 산업생태계 전반에 걸쳐 국고채 수준의 파격적인 저리 대출을 할 수 있도록 반도체 설비투자 특별프로그램 신설을 준비 중이다. 강 회장은 국고채 수준의 대출금리를 구상한 데 대해 "미국의 사례를 보면 보조금을 주거나 특례대출을 실행할 때 국고채 금리 수준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이 수준에서 지원하면) 통상 관점에서도 문제가 적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첨단전략산업에 100조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일부는 현재 기획 중인 반도체 분야에, 잔여 자금은 이차전지, 바이오·헬스, 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고 강 회장은 밝혔다.
강 회장은 이러한 정책금융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선 산은의 안정적인 재무구조 확보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우선 법정자본금을 현재의 두 배인 60조원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는 10년째 30조원에서 변동이 없다. 강 회장은 "현재 자본금은 26조원으로, 반도체 산업지원을 위한 예정액과 올해 이미 예정된 증자금액 4000억원을 고려하면 한도는 2조원도 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100조원 규모의 정책자금 투입과 산은의 BIS비율의 현 수준 유지를 위해선 10조원의 자본확충이 동반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 배당 유보, 현물 배당 등이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를 정부 및 국회와 논의해나갈 거라고 덧붙였다.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 추진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내비쳤다. 산은은 지난해 5월 이전대상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산은 본점 이전을 뒷받침할 산은법 개정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산은 노동조합 및 경제계 등에선 본점 지방이전의 실익이 없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 회장은 "본점 부산 이전은 남부권 경제와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고 남부권을 또 하나의 성장축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정과제로 추진돼온 사안"이라면서 "산은법 개정 전에라도 실질적인 이전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남부권투자금융본부'를 설치하고 본부 산하에 '호남권투자금융센터'를 비롯해 '지역기업종합지원센터'를 추가로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KDB생명 매각 지연을 두고선 아쉬움도 드러냈다. 올해 초엔 MBK파트너스로의 매각이 무산됐다. 벌써 여섯 차례다. 산은은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DB생명을 떠안았다. 현재 KDB칸서스밸류유한회사와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가 총 95.66%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강 회장은 "KDB생명은 아픈 손가락 중 아픈 손가락"이라면서 "매각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원매자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내년 2월에 (과거 KDB생명 인수를 위해 조성한) 사모펀드의 만기가 도래하는데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서 KDB생명의 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을 검토해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