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오현승 기자] 국내 은행들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출국 정부 및 금융당국과 우호적 관계를 수립하고 현지 사업자들과의 업무 제휴 범위를 넓히는 것도 필수다.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글로벌 사업수립 때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2021년 국내은행의 해외점포 경영현황 및 현지화지표 평가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해외 자산규모는 1832억 2000만달러(한화 약 262조원)다. 이는 1년 새 11.0%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 해외점포의 당기순이익은 1년 새 62.1% 급증한 11억 6500달러(약 1조 57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해외점포는 204개로 1년보다 7개 늘었다. 몸집과 수익성 모두 1년 전보다 나아진 셈이다.
글로벌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려면 어떠한 전략을 펼쳐야 할까. 우선 국내에서 쌓은 금융 노하우를 진출국에 소개해 사업 제휴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한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KB국민은행은 주택금융에, NH농협은행은 농업과 관련한 사업모델 구축에 강점이 있는데,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의 은행과 진출국의 금융권 및 경제·산업계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은 해외 자본에 대한 현지 금융당국의 거부감도 낮춘다. 은행과 비은행 간 시너지를 키우는 것도 해외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다. 신한베트남은행이 최근 베트남 핀테크 비상장회사에 투자를 확대하며 현지 스타트업 및 금융 생태계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게 좋은 사례다.
장기간 관점의 해외 진출 전략 수립은 필수다. 일본의 주요 대형은행들이 글로벌 사업에 30년이 넘게 투자하며 현지화에 성공한 게 대표적이다. 때문에 진출국의 경제적·정치적 불안을 이유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접는 건 최대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국내 은행권은 지난 1997년 태국 사업 철수 후 현재까지 재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 IMF 외환위기라는 국내 상황의 불가피성을 고려하더라도 현지 사업을 철수한 데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나온다. 과거 태국 사례 의 교훈 때문일까. 국내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미얀마의 정치불안에도 불구하고 현지법인, 지점 등 네트워크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나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금융규제는 과감히 풀어주는 것도 은행 등 금융사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한 한 방법이다. 일례로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금융사의 해외진출에 따른 사전신고 부담을 낮췄다. 종전엔 역외금융회사 투자 시 금액과 관계없이 사전신고를 해야 했지만, 연간 누계 투자액이 2000만 달러 이하라면 투자 후 1개월 이내 사후보고를 허용하는 걸로 규정이 바뀌었다. 해외지점의 부동산·증권·1년 초과 대부거래 등의 영업활동은 사전신고에서 사후보고로 전환됐다.
글로벌 경기 상황에 맞춰 신중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각도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한 글로벌사업 관련 부서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장기화, 경기침체 우려 확산 등에 따라 가계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가 있을테고 이는 은행의 부실자산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은행의 최고경영진이나 이사진들은 사업계획 수립 시 향후 거시경제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취약 요인에 대해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우식 NH금융연구소장은 “내년 전 세계 경기가 더욱 어려울 거라는 전망엔 이견이 없는 만큼 해외 IB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기보다는 당분간 리스크 관리에 보다 집중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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