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일의 전자계산기] 알짜 기업 사들이는 현금부자들

재계, 과감한 베팅으로 우량 매물 사들여 사업 전환 속도
비효율적 국내 M&A, 무리한 인수로 '승자의 저주' 속출

기업들은 신시장 개척 및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인수·합병(M&A), 매각, 분할 등 중요한 결정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산출이 됐는지, 수익성은 괜찮은 것인지 투자자 입장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제시되는 공모가나 각 기업의 연봉이 어떤 방식으로 산정됐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비즈는 다양한 평가 방법과 기업간 비교 등을 통해 숫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전자계산기]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장영일 기자] 기업간 굵직한 인수합병으로 재계 판도가 뒤바뀌고 있다. 알짜 기업 인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국내 M&A에선 '승자의 저주' 사례가 적지않다.  국내 M&A의 비효율 뿐만 아니라 피인수 기업의 구조조정 우려 등도 여전하다.

 

◇ 현금부자 기업들, 알짜 기업에 과감하게 베팅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현산 컨소시엄은 매입 가격으로 2조4000억∼2조5000억원 정도를 써낸 것으로 알려져 1조5000억∼1조7000억원을 제시한 애경 컨소시엄과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적어 낸 KCGI 컨소시엄을 압도했다.

 

이보다 앞선 웅진코웨이의 지분매각 본입찰에서는 넷마블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넷마블은 웅진씽크빅의 웅진코웨이 지분 25.08%의 인수가로 약 1조83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4차 산업혁명으로 재계의 미래를 내다보는 수가 더 정교해지고 빨라졌다. 단순한 시너지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틀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과 롯데의 화학 빅딜 이후 국내 M&A 시장은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작년 마무리된 국내 M&A 거래규모는 57조원으로 집계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넘겼다. ADT캡스를 SK텔레콤-맥쿼리 컨소시엄이 2조9700억원에 사들였으며, 오스트리아의 자동차용 헤드램프 제조업체 ZKW도 LG전자가 1조4400억원에 인수했다. 특히 이 건은 LG그룹 내 첫 빅딜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외받는 기업도 있다. 시장에 꾸준히 매물로 나오지만 시장의 관심을 못받는 경우다. 대우건설이 대표적이다. 작년 1월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본입찰에 단독 참여했지만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수를 포기했다.

 

또는 인수시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경우 인수자를 구하기 힘들 수도 있다. 넥슨은 재무구조가 견실하지만 인수시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과 자금경색 우려로 매각이 무산됐다. 국내 최대 M&A 규모인 10조원에 달하는 매각대금과 후보들이 제시한 금액의 간극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현 산업에 대한 불안감 vs 사업 전환 속도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M&A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M&A는 핵심 사업급으로 아예 업종을 전환하려는 움직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M&A거래소(KMX)가 발표한 '한국M&A거래소 M&A의뢰기업 M&A정보 종합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업 인수목적은 기업의 성장 및 확장이 665건(40.2%)으로 가장 높았다. 기업경쟁력 제고와 신성장동력 확보가 각각 417건(25.2%), 320건(19.3%)으로 뒤를 이었다.

 

기업 매도 목적으로는 기업 생존의 문제·영업실적 악화가 501건(30.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자금 부족 문제 해소와 가업승계 문제 해결은 각각 420건(25.4%), 286건(17.3%)이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국내 기업에 관심을 갖는 외국 기업들이 적어졌다. 국내 기업 가치가 그만큼 외국인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중국 자본과 외국 투자회사 등은 국내 M&A 시장의 단골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근 M&A에서는 이들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사모펀드(PEF)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작년 1조원 이상 거래의 대부분은 PEF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 형태로 이뤄져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무리한 인수, 승자의 저주 피할까

 

넷마블에 인수되기전 웅진코웨이는 웅진그룹이 재인수한지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매물로 나왔다. 인수과정에서 웅진그룹과 한국투자증권이 무리해서 인수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업계는 사실상 승자의 저주로 보고 있다.

 

'승자의 저주'라는 용어는 최고가에 낙찰되는 경쟁적인 경매에서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싸게 인수가격을 지불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매 용어였지만 최근 국내 M&A 시장의 단골 용어가 돼버렸다.

 

국내 M&A에 문제점이 있다. 국내 M&A가 재무적으로 부실한 기업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며, 결국 M&A 이후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모두 재무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2004∼2017년 국내 상장기업의 1379건에 달하는 최대주주 변경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피인수기업 가운데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곳이 53%,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은 61%였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등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71%에 달했다.

 

특히 피인수기업은 M&A가 이뤄진 지 2년 후를 기준으로 총자산순이익률(ROA)이 4.9% 하락했다. 인수기업은 ROA가 4.8% 하락했다.

 

무리한 몸집 줄이기로 인한 피로감도 상당하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아시아나는 매각이 확정된 지 약 2주 만에 '무급휴직' 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며칠 뒤 다시 사내 인트라넷에 '희망퇴직' 접수를 올렸다. 현대중공업과 피인수 기업인 대우조선해양도 구조조정 우려로 양측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인수자 측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법인 분할이 되면 자연스레 진행될 내부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다.

 

피인수업체의 임원들도 좌불안석이다. M&A 성공시 대부분의 임원들은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별로 불리지만, M&A 앞에선 가장 약한 존재가 임원이다.

 

금호산업이 이사회 의결을 통해 아시아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를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밝힌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청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가 이착륙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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