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승이 만난 금융키맨] 문영배 소장 "규제가 혁신 발목잡아선 안 돼"

신규사업자가 기존 사업자와 공정 경쟁하도록 환경 조성 절실
암호화폐 전면 규제는 '패착'…소비자 편익에 정책 초점 맞춰야

금융산업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은행·증권· 보험 등 전통적 방식의 업종 간 칸막이가 무의미해지고  IT기기 발달 등으로 글로벌·디지털화도 급속도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 같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금융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금 융통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금융의 본래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파이낸스는 자산관리, 디지털 및 글로벌 전략, 빅데이터, 소비자보호, 핀테크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오현승이 만난 금융키맨]을 통해 싣는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과 금융 관련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도 함께 조망해본다. <편집자주>

[세계파이낸스=오현승 기자]  "월드 와이드 웹(WWW)이나 바젤(Basel) 등의 기준이나 개념은 먼저 시작한 이들의 것이다. 우리가 먼저 세계표준을 만들어 주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매번 해외사례를 살피며 머뭇거리면 영원히 1등이 될 수 없다."

지난 12일 여의도에서 만난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대표적인 규제혁신론자다. 문 소장은 최소한의 지켜야 할 룰은 두더라도 정책이나 서비스의 방향은 항상 소비자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금융혁신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로 '과도한 규제'를 꼽았다. 문 소장은 태풍을 맞은 배를 사례로 들면서 "배 탑승객들이 바람을 피해 한 곳으로만 이동하게 되면 결국 배는 균형을 잃고 좌초하게 된다"며 "은행업 규제를 예로 들면 당국의 여러 규제를 준수하다 보니 위기상황에 따른 한국 은행들의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이 판박이가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위기발생 시 개별 금융회사들이 위기대응 매뉴얼대로 대응할 경우, 우리 금융업 전체로 퍼질 위험의 잠재력도 살펴야 하는 새로운 규제영역이 생겨나버렸다"고 지적했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

문 소장은 "규제는 하면 할수록 정부의 간섭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금융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경영전략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해 주되 은행의 책임범위를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금융업권 내 혁신과 관련해선 "정책입안자들은 신규 사업자들이 기존 사업자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1년 반 전 정부가 암호화폐를 강력히 규제하고 나선 건 과도한 규제의 대표적인 폐해라고 지적했다. 문 소장은 당시 정부의 대응방식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봤다. 당시 한국은 블록체인 관련 글로벌시장을 이끌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과도한 대응의 부작용으로 이제 주도권이 미국이나 일본으로 넘어가버렸다. 그간 블록체인 기업들의 계좌 개설, 해외송금 등이 금지되면서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쪼그라든 것이다.

"정부는 현금 또는 은행 등 중개인을 통한 자금의 흐름을 모니터링해서 정부재정에 필요한 과세를 한다. 또 중앙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통화가치를 안정시킨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채굴에 의해서만 코인의 개수가 늘어나게 만들어진 구조적 한계 때문에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엔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커서 화폐 대체가 어렵다. 시스템 내에서 거래참여자의 식별이 실명으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개인을 통해 경제거래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정부의 이해와 충돌도 일으킨다. 이러한 경우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해 '금지'입장을 표명하기 보다는 기존질서의 연속성에서 꼭 필요한 수단들을 제시하고 이를 신기술이 반영하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한다."
 
문 소장은 정부가 이 같은 선택을 했더라면 자연스럽게 경쟁을 촉발시키고 기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즉 투기적인 요소를 막기위한 노력과 병행해 시장에서 스스로 암호화폐의 가치 안정화수단을 강구하도록 유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소장은 디지털기술에 기반을 둔 IT 및 플랫폼 기업들의 금융산업 진입이 가속화되는 이른바 '테크뱅킹' 흐름에 대해 "경쟁 촉진을 통해 소비자의 효용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각 사업자가 질 좋은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제공하려는 경쟁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누리는 효용은 저절로 커지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테크뱅킹 흐름에 대해 현행 금융업권의 시각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관점에서만 현 상황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단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픈뱅킹 이용에 따른 높은 수수료 등) 종전 금융사들이 새 사업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일종의 '진입장벽'을 세우고 싶어하는 건 어쩌면 그간의 업무영역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책당국은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은행 등 기존 금융업권을 향해선 "CEO가 제대로 된 통찰력을 갖고 기술진보가 금융업에 미칠 대변혁에 대해 겉으로만 대응하려고 해선 안 된다"며 "정책당국을 설득해서라도 더 근본적이고 선도적인 대응을 추진하는 곳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정책당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금융 및 경제생태계의 미래혁신을 연구하고 정책당국과 적극적으로 공유해 금융업 스스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문 소장은 새 제도나 시스템을 도입할 때 정책 당국자들이 산업현장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잠재적 위험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정책입안자에게 지워지는 현재의 사회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에 막혀있거나 규제가 미비한 신규 영역의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사업자들을 향해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새 서비스 도입에 따른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부작용의 크기도 함께 제시하는 게 좋다"며 "당국자들이 자신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알게 해주면 이들과 보다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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