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은 산은…엎질러진 물 주워담을 수 있을까?

한국GM, 거부권 기한 종료되자마자 군산 공장 폐쇄 결정
산은, 실사 후 고용 유지 등 조건 달아 지원 검토할 듯

산업은행 본점. 사진=주형연 기자
KDB산업은행이 안일한 태도로 협정을 맺었다가 한국GM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주요 경영사항 거부권 협정의 기한이 종료되자마자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대규모 실업 및 지역경제 악화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금융권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와 산은은 한국GM에 대한 실사를 준비 중이다. 제3의 외부 전문기관을 어디로 선정할지, 실사 범위는 어디까지로 할지 등을 놓고 GM과 협상 전 실무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군산공장 폐쇄 추진이라는 충격이 닥친 후에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산은은 지난 2002년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하면서 한국GM의 지분율 17.01%를 유지했다. 또한 2대주주로 한국GM의 공장 이전이나 폐쇄 등 16개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15년간 거부권을 가지는 것으로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이 거부권은 지난해 10월로 종료됐으며 한국GM은 종료되자마자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너무 안일했다"며 "처음부터 거부권을 무기한으로 설정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부터 이미 거부권 기간 만료 후 한국G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거란 설이 파다했는데 산은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넋놓고 있다가 뒤통수만 맞았다"고 꼬집었다. 

이제 와서 실사에 착수한다 해도 실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또 실사 후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산은은 한국GM에 대한 재무실사에 앞서 △매출원가 및 이전가격 공개 △본사와의 고금리 불공정거래 의혹 해명 △주주감사권 행사 허용 등 3대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GM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산은이 한국GM의 2대 주주로서 상법상 보장된 회계장부 열람, 재무상태 검사 청구 등의 권리를 행사하려 했지만 한국GM의 비협조로 번번이 실패했다"고 전했다.

산은은 지난해 3월 주주감사권을 발동해 한국GM 측에 매출원가와 본사 관리비 부담 규모 등 116개의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GM은 6개만 제출하고 나머지는 '기밀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3월에도 산은은 한국GM을 중점관리대상 회사로 지정한 뒤 △경영진단 컨설팅 진행 △선제적 모니터링 강화 △소수주주권 강화 등 내용을 담은 중점관리방안을 수립했지만 GM이 이를 거부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산은은 그간 2대 주주로서의 권리와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처음부터 협정을 잘못 체결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이대로 정부와 산은이 한국GM의 결정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할 경우 군산을 비롯해 전북도 지역경제가 입을 타격은 막대할 전망이다. 

먼저 군산공장 근로자 2000여명을 비롯해 1.2차 협력업체까지 최대 1만여 명이 거리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GM이 한때 전북경제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비중 있는 공장이었던 탓에 군산뿐 아니라 전북도 경제까지 악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번 공장 폐쇄 조치로 최대 30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며 "지역경제가 붕괴 수준의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단 산은은 실사부터 끝난 뒤 다음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실사를 통해 한국 GM의 경영 정상화가 가능한지 등 여부를 파악할 것"이라며 "실사 후 지원 등 향후 대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GM 측에서 협상 시한을 이달 말로 못 박고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사실상 산은이 군산 공장 폐쇄를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며 "아마 대출 지원 등을 미끼로 고용 유지 등 조건을 제시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도 "군산 공장 폐쇄는 기정사실"이라며 "그나마 한국GM이 국내에서 완전 철수하는 것이라도 막아야할 텐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산은이 실사 후 지원을 하게 되더라도 회생이 불투명하다"며 "자칫 국민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깐깐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형연 기자 jhy@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