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먹는 회사 방조하는 우리은행

계좌 압류된 회사에 신규 계좌 ‘척척’…은행권 잘못된 관행에 피해자 양산

우리은행이 빚을 갚지 않아 계좌가 압류된 거래기업에 신규 계좌를 터줌으로써 해당 회사 대표가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걸 사실상 방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이런 식의 신규 계좌를 악용한 채무면탈 행위를 단지 “불법은 아니다”란 이유만으로 방관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은행권의 관행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26일 우리은행에 법원으로부터 압류명령서가 한 장 도착했다. 북촌상회가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으니 북촌상회의 기업계좌에 현재 있는 예금 및 앞으로 입금되는 돈을 채권추심액에 도달할 때까지 압류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은행은 명령서대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했다. 당시 압류를 추진한 북촌상회 채권자는 J씨로 압류금액은 총 1억2752만8000원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 북촌상회 대표 A씨는 법원의 압류 명령을 아주 쉽게 비껴갔다. 압류된 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우리은행 재동지점의 한 직원을 통해 북촌상회 이름의 기업계좌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A씨는 이어 신규계좌를 통해 아모레퍼시픽으로부터 수억원의 어음을 결제 받고, 그 어음을 할인해 현금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11월 29일자로 발행된, 2억4425만3275원이 찍힌 북촌상회 기업자유예금 계좌의 예금 잔액증명서로 실증된다. 
계좌가 압류된 후에 새로 만든 북촌상회 기업계좌. 예금잔액 2억4000여만원이 찍혀 있다.

당시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J씨 외에도 A씨의 계좌를 압류하고 싶어하는 채권자는 여럿이었다. 북촌상회가 대리인이 되어 진행하던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사은품 행사와 관련해 여러 하청업체로부터 약 5억원어치의 물건을 납품받고도 결제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결제대금을 챙긴 A씨는 역시 변제는 전혀 하지 않은 채 계좌에서 몰래 돈만 빼내갔다.

격노한 채권자들은 A씨를 경찰에 고소했으나, 아직 돈은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북촌상회 대표는 다른 사람으로 변경됐으며, A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채무자가 작정하고 채권자 몰래 돈을 빼돌리려는 것을 은행이 사실상 방조한 부분이다.

한 채권자는 “우리은행이 북촌상회 명의의 신규 계좌만 만들어주지 않았더라도 기존 계좌에 아모레퍼시픽의 결제대금이 입금됐을 것”이라며 “그렇게 됐으면, J씨뿐 아니라 다른 채권자들도 돈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채권자는 “A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은행 직원이 채무면탈 의도를 알면서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고 의혹을 표했다.

우리은행 측은 “계좌가 압류당한 기업의 명의로 새 계좌를 만들어주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고 해명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압류통장 명의의 고객에게 신규통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되도록 지양하라고 교육하고는 있다”며 “그러나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므로 현장의 판단에 일일이 간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은 다른 은행으로 가서 새 계좌를 만들면 그만이기에 압류통장 명의 고객이더라도 신규통장 개설을 강하게 요구하면 은행원으로서는 거절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은행이 ‘고객’의 채무면탈 행위를 눈감아주는 사이 돈을 떼인 피해자들의 눈물은 쌓여만 가고 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seilen78@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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