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 금융지주 및 은행권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준비해온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안갯속에 빠졌다. 당초 지난 3월 가이드라인의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됐으나, 세부 조율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발표 시점이 불투명해지는 모양새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의 투명성 확보와 이회의 독립성 제고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 대책을 검토해왔다. 이는 이른바 ‘거듭되는 셀프 연임’ 논란과 내부통제 부실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특히 이사회가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고,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외부 전문가나 주주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 등이 핵심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업계의 반발과 실효성 논란이 발목을 잡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국의 개입이 자칫 ‘관치 금융’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민간 금융사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미묘한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각 금융지주마다 처한 지배구조 환경이 상이해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금융당국은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두르다 부작용을 낳기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장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각 금융사들이 차기 회장 선임이나 이사회 개편 등 굵직한 경영 스케줄을 확정하기에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앞서 이찬진 금감원장이 지난 22일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할 예정이었지만 개선안 발표 지연 등의 영향으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
결국 이번 개선안은 금융의 신뢰도를 결정지을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당국이 업계와의 소통을 통해 ‘지배구조 선진화’와 ‘자율 경영’ 사이에서 방안을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가 늦어질수록 금융권의 경영 불확실성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