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지 한 달이 다가오면서 중동 정세가 장기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개전 직후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와 핵·에너지 시설 공습이 이어졌고 이에 맞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대응하며 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양측이 종전 협상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으나 성사 여부에 따라 전쟁 장기화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전쟁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한때 119달러대까지 치솟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사상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할 정도로 공급 충격이 심화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과거 오일쇼크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유가 장기화 시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대응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2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중동 위기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져 파급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작은 행정적 실수도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끝까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히 에너지 대응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 2차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담합·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공부문은 차량 5부제를 솔선수범하고 국민도 대중교통 이용 등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는 등 민생 안정 대책을 추가로 실행한다. 현재 휘발유, 경유의 유류세를 각각 7%, 10% 인하하고 있는데 인하 폭을 27일부터 15%, 25%로 각각 확대한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ℓ당 유류세는 휘발유가 763원에서 698원으로 65원 감소하고, 경유는 523원에서 436원으로 87원 줄어든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기존에는 4월에 종료 예정이었지만 그 시점을 5월 말로 늦춘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요소 국제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폭리 목적의 매점 및 판매 기피 행위 등을 방지하도록 촉매제(요소수)와 원료인 요소의 매점매석행위를 금지한다. 이런 규제를 담은 촉매제(요소수) 및 그 원료인 요소 매점매석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27일부터 시행한다.
재정경제부는 기후환경에너지부, 산업통상부 등과 함께 매점매석 행위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신고 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등과 합동 점검반도 운영한다.
유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은 운송업계의 부담을 덜어주도록 현재 50% 할인 중인 영업용 화물차(심야 운행) 및 노선버스의 고속도로(도로공사 관리) 통행료를 한 달간 면제한다.
물가 특별 관리 품목도 확대한다. 기존에는 돼지고기, 계란, 고등어, 쌀, 석유류, 통신비, 교복, 의약품 등 23가지 품목을 대상으로 했는데 공산품 및 가공식품 전반에 시설농산물, 택배이용료, 외식서비스 등 20개 품목을 더해 43개 품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아울러 상반기 중앙공공요금을 동결하고, 택시·시내버스·지하철 등 지방공공요금도 지방정부와 협조해 동결을 원칙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력 문제도 주요 리스크로 지목됐다. 이 대통령은 “전기요금을 억제한 상태에서 사용량이 늘면 한국전력의 적자 확대와 에너지 낭비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며 “전기 절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전 적자가 약 200조원 수준에 이르는 만큼 에너지 수요 관리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번 중동발 에너지 위기를 단기 충격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보고 대응 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위기는 전 세계가 함께 겪는 공동의 도전”이라며 “지혜를 모으고 고통을 나누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