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에 대한 이란의 반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3주 넘게 이어지면서 헬륨 가스 공급망 훼손에 따른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의 부산물인 헬륨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핵심 물질인데 공급망의 핵심 축인 카타르가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서다. 공급 차질이 길어질 경우 헬륨 현물가격이 200%까지 급등할 거란 국제 신용평가사의 분석도 나온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란 분쟁 장기화와 카타르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 지속으로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이 헬륨 부족으로 인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카타르가 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앞서 카타르 내무부는 지난 19일 이란의 공격으로 북부 해안에 인근 라스라판 지역에 소재한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LNG(옛 카타르가스)가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최근 카타르에너지LNG는 연간 7700만톤 규모의 자사 시설 생산을 중단하고 LNG 선적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하기도 했다. 카타르 에너지 장관은 “분쟁 종식 후 정상적인 공급이 재개되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무색, 무취인 헬륨은 수소 다음으로 가벼운 원소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특히 리소그래피, 에칭 및 증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카타르의 헬륨 매장량은 101억㎥로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84억 9000만㎥), 알제리(82억㎥), 러시아(68억㎥)도 헬륨 매장량 상위 국가다.
헬륨 공급에 특히 취약한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반도체 공룡 모두 헬륨 공급망 위기의 영향권에 있다. 한국은 지난해 헬륨 수입량의 약 64.7%를 카타르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공급망 위기로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라고 피치는 분석했다. 대만 역시 헬륨 공급의 대부분을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어 비슷한 위험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중국 역시 헬륨 수요의 80% 이상을 카타르와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공급망 위기는 인텔,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소재한 말레이시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반도체 무역의 약 7%, 칩 제조, 테스트 및 패키징의 약 13%가 이뤄지는 국가다.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의 헬륨 조달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일본은 헬륨의 약 50%를 미국에서, 28~33%를 카타르에서 조달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일본 양국에 재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치는 “향후 헬륨 공급 부족이 심각한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헬륨 현물 가격이 50%~200%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