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으로 떠오른 산업들] 전쟁이 키운 고유가 공포…석유 덜 쓰는 산업이 뜬다

중동사태로 고유가에 새로운 산업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의 고속도로에 차들이 가득한 모습. AP/뉴시스
중동사태로 고유가에 새로운 산업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의 고속도로에 차들이 가득한 모습. AP/뉴시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그간 비용과 효율 중심으로 다뤄졌던 에너지 문제가 다시 안보와 공급망 이슈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비축 대응을 점검하고 있다. 제조업 전반에서는 전력 효율 제고와 함께 석유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석유 기반 원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바이오 소재와 대체 플라스틱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쟁 국면에서 방공체계와 정밀유도무기 등 방산 가치가 재부각되는 점도 눈에 띈다. 유가 급등은 단순한 원가 상승을 넘어 국내 산업 구조 전반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운송업계는 유류비 부담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도 원가 상승 압박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계가 체감하는 부담은 단순히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원유와 가스를 어느 항로로, 어떤 가격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올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공급망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향후 3개월간 비축유를 단계적으로 방출하고 6월까지 해외 생산 원유 335만배럴을 국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가격 상승보다 공급 차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국은 그간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석유의 약 70%, 천연가스의 약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 지역 긴장이 고조될수록 원유 도입선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가 된다. 정유업계와 수입업계가 미국산 원유와 비중동권 조달 확대, 장기계약 구조 재점검에 속도를 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친환경에너지와 전력 기반 생산체계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재생에너지와 ESS는 탄소중립 대응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고유가 국면에서는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도 의미가 커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저장장치를 확대해 전력 조달의 안정성과 자립도를 높이면 국제 유가 급등의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터리 업계가 ESS를 전기차 수요 둔화의 대안이자 미래 성장축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가가 오를수록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설비와 시스템의 경제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차에 주유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이 차에 주유하고 있다.  뉴시스

석유화학업계의 고민은 더 깊다. 원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플라스틱과 포장재, 섬유, 화학소재의 핵심 원료다. 유가 급등은 곧바로 원료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뒤흔든다. 이 과정에서 대체 플라스틱과 바이오 기반 소재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친환경 프리미엄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원재료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도 평가된다. 업계 안팎에서 화이트바이오와 탈플라스틱 흐름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 차원을 넘어 산업 안정성 확보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태가 국내 산업계에 던진 과제는 분명하다. 더 싼 원유를 확보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로 조달 리스크를 낮추고 재생에너지와 ESS를 활용한 전력 기반 생산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산업계가 고유가와 공급 충격에 덜 흔들리는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더 싼 원유를 찾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원유 도입선 다변화, 재생에너지와 ESS 확대, 바이오 소재와 대체 플라스틱 육성을 통해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에너지 안보와 산업 안보, 방산 역량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산업 전략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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