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에 ‘핸즈프리’ 기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손에 쥔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만으로 통화 방식이 달라졌다. 그리고 곧 새로운 표준이 됐다. 자동차도 비슷한 변화를 맞고 있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는 ‘운전의 핸즈프리’가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실제 도로 위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자율주행 기술 경쟁이 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슈퍼 크루즈’,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 슈퍼바이즈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포티투닷(42dot)의 ‘아트리아 AI’는 모두 운전자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적용 범위와 상용화 수준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먼저 현실화된 ‘핸즈프리’
GM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에 ‘슈퍼 크루즈(Super Cruise)’를 적용해 한국에 선보였다. 고속도로와 일부 간선도로 등 약 2만3000㎞ 구간에서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고도 주행할 수 있는 고급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이다. 다만 정밀 지도(HD맵)가 구축된 구간에서만 작동하며, 운전자의 시선과 전방 주시 여부를 카메라로 계속 확인한다.
국제·국내 기준 모두 슈퍼 크루즈는 레벨 2 ADAS로, 법적으로는 여전히 운전자 책임이 전제된 보조 기능이다. 그럼에도 양산차에서 ‘손을 떼는 주행’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감독형 AI 주행’을 표방하는 테슬라 FSD
테슬라는 한국을 FSD 슈퍼바이즈드(FSD Supervised) 공식 제공 국가에 포함하며, 일부 최신 모델 S·모델 X에 OTA(무선 업데이트)로 기능을 열었다. 차선 유지·가감속·차선 변경·교차로 통과·일부 도심 주행 보조·자동 주차 등 다양한 기능을 묶은 패키지로, 별도 옵션으로 판매된다.
FSD의 특징은 라이다나 HD맵 대신 카메라와 AI 학습 중심으로 주변을 인식한다는 점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FSD 역시 레벨 2 ‘감독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 분류되며,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고 즉시 개입할 책임이 있다. 이름과 달리 완전 자율주행으로 인정되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공통된 입장이다.
◆지도 의존도를 낮추려는 포티투닷의 실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포티투닷은 아이오닉 6 시험 차량을 통해 카메라 기반 엔드투엔드(E2E) 자율주행 기술 ‘아트리아 AI(Atria AI)’를 공개했다. 신호 대기, 차선 변경, 교차로 좌회전, 지하 주차장 진입과 자율 주차 등 복합적인 주행 장면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아트리아 AI는 HD맵 의존도를 낮추고, 다수의 카메라와 연산 장치를 통해 얻은 영상 데이터를 AI 모델이 직접 해석해 조향·제동·가속 명령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지도 구축·유지 비용과 도로 환경 변화가 잦은 국내 상황을 고려한 접근으로 평가되지만, 아직은 연구·시험 단계로 일반 소비자용 양산차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업계에서는 포티투닷의 행보를 테슬라 FSD 국내 도입에 대응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방향성을 보여주는 제스처로 해석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내에서는 아직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가 일반 소비자용으로 상용화된 사례가 없다”며 “기술 개발만으로는 부족하고, 안전성 검증과 법·제도 정비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슈퍼 크루즈가 고속도로 위주로 제한되고, FSD가 ‘감독형’으로 규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포티투닷의 기술 역시 실도로 검증과 제도적 승인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비로소 상용화 단계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