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간 복잡한 셈법…개성공단 재개 가능할까?

美 “비핵화 진전 있어야”…영변 핵시설 폐기 등 요구 전망
對中 무역 비중 높은 북한, 개성공단보다 제재 완화 원할 듯

개성공단 전경. 사진=연합뉴스
[세계파이낸스=안재성 기자]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개성공단 재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미국 하원을 방문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개성공단 재개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개성공단 관련주가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서로 달라 재가동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국은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중 무역 비중이 높은 북한은 비핵화의 첫발을 딛는 대가로 개성공단보다는 제재 완화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美 “대가 없이는 개성공단 재개 불가”

개성공단과 관련해 미국은 거듭해서 아무 대가 없이 재개를 허락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요청하자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고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개성공단 재개에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신 인도적 차원에서의 쌀 지원을 권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미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 등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미국 하원 의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브래드 셔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이 주관하는 개성공단 설명회에 참석해 개성공단 재개를 열정적으로 설득했다.

그러나 미 하원 의원들은 "비핵화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 개성공단 재개가 가능하다"는 기존 의견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셔먼 의원은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가동으로 금전적 혜택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며 북한이 이득을 얻는 만큼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핵화 진전, 즉 영변 핵시설 폐기 혹은 동결과 개성공단 재개를 맞바꾸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의 좌담회와 이어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문 특보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 수준 이상으로 처리하면 개성공단 재개 등 부분적 제재 해제 정도의 보상은 충분히 받을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별도의 제재 완화 결의를 하거나 제재 위원회에서 예외 규정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셔먼 의원 역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도 개성공단 재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보다 北中 무역에 관심 높은 북한

그러나 북한은 개성공단 재개보다는 대중 무역 회복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관측이다. 아직은 북한 경제가 견딜 만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대중 무역 비중이 매우 높아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거나 폐기할 경우 제재 완화 대상을 개성공단 보다는 대중 무역 부분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북한의 201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9%, 2017년은 –3.5%로 추정했다. 특히 작년에는 –5%대로 악화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2016~2017년에 걸쳐 북한 경제에 숨통을 조일 목적으로 채택된 UN 제재 결의, 수산물과 석탄, 철광석, 섬유 수출 등을 금지한 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북한 경제가 저평가됐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광공업 생산이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양 센터장은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북한의 석탄 생산량이 249만톤밖에 늘어나지 않았는데 대중 수출 물량은 1520만톤이나 급증했다”며 “북한의 석탄 생산량이 실제보다 적게 추정됐을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광공업은 GDP의 13~14%를 차지한다”며 “광공업이 저평가됐다면 북한의 경제성장률도 한은 통계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은 추정치대로라면 북한의 GDP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겨우 4% 성장한 것”이라며 “북한에서 개혁개방정책이 본격화된 2013년 이후 작년까지 5년 동안 누적 성장률도 1.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래 몇 년 간 평양 등에 들어선 수많은 신축 건물과 급속하게 늘어난 각종 차량들, 600만대에 육박하는 휴대폰 숫자 등을 고려할 때 이는 믿기 어려운 숫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평양남새과학연구소에 대규모의 지능형 온실을 건설했다. 또 아리랑메아리는 김일성종합대학 화학부 연구원들이 전기 소비가 적은 수소발생장치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이 상당한 수준의 자본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도 “북한에 대한 오판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것보다 더 힘들 때도 견뎌냈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자력갱생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현재 북한 경제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북한은 대중 무역 비중이 매우 높아 개성공단보다는 북중 무역의 활성화를, 즉 중국, 러시아 등과의 자유로운 교역을 막는 UN 제재의 완화를 원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은 2억900만달러로 전년(16억5000만달러)대비 87.3%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중 수입도 33억3000만달러에서 22억1800만달러로 33.4% 줄었다.

최장호 대외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UN 제재의 유예 기간이 대부분 2017년에 종료됨에 따라 2018년부터 제재가 본격적으로 이행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북한 GDP가 167억8000만달러(UN 통계)인 것을 고려할 때 제재 전 대중 무역 비중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치다. 대중 교역이 GDP의 3분의 1 가까이를 차지한 것이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중 무역 규모가 크게 축소되면서 직접적으로 연결된 광공업이나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 등 연관 산업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간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얻은 외화 수입은 3억8000만달러(현대경제연구원 집계)에 불과했다. 연 평균 3800만달러로 과거의 대중 무역 규모는 물론 UN 제재가 본격화된 작년 규모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의 대가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로는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은 대중 무역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UN 제재 완화를 요구했었다.

이를 반영하듯 문 특보의 입장도 바뀌었다. 문 특보는 지난 4월 4일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과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사찰·검증을 통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증명할 수 있다면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 관련 제재를 풀어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이 이미 폐기한 곳이다. 이를 증명만 하면 된다는 것은 영변 핵시설 폐기나 동결에서 크게 후퇴한 안이다. 2개월 사이 문 특보의 입장이 확 바뀐 것은 결국 개성공단 재개 정도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설득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주에 대해 과도한 긍정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seilen78@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