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승이 만난 금융키맨] 이우식 농협은행 지점장 "은행의 해외진출, 신뢰·협력이 핵심"

'후발주자' 약점 딛고 베트남서 농협은행 첫 지점 개설
긴 호흡갖고 현지화 꾀해야…5년 현지 경험 담은 책 출간

금융산업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은행·증권· 보험 등 전통적 방식의 업종 간 칸막이가 무의미해지고  IT기기 발달 등으로 글로벌·디지털화도 급속도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 같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금융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금 융통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금융의 본래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파이낸스는 자산관리, 디지털 및 글로벌 전략, 빅데이터, 소비자보호, 핀테크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오현승이만난 금융키맨]을 통해 싣는다. 이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들과 금융 관련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금융산업의 발전 방향도 함께 조망해본다. <편집자주>

[세계파이낸스=오현승 기자] 이우식 NH농협은행 당산지점장(사진)은 동남아시아에서 농협은행의 첫 지점 개설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그는 2013년 베트남 하노이사무소장에 부임한 후 3년 여 만에 지점 라이선스를 따냈다. 경쟁사들에 견줘 해외진출이 늦었던 농협은행으로선 그야말로 쾌거였다.

이 지점장은 "지점 개설에 성공한 건 현지 인가당국에 농협은행의 진정성을 꾸준히 전달한 결과"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러면서 "해외 시장에 뿌리내리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현지당국 및 고객들과의 신뢰가 핵심"이라며 "현지 사업체와의 협업 역시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라고도 덧붙였다.

이우식 NH농협은행 당산지점장. 사진=오현승 기자


또 그는 농협은행이 가진 장점을 살린다면 글로벌 사업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기자는 지난 15일 농협은행 당산지점에서 이 지점장과 인터뷰하면서 지점 라이선스 획득 과정과 베트남 시장의 특성 및 성공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농협 알리고 현지 당국과 신뢰구축…3년 만에 지점 인가 획득 쾌거

베트남은 1986년 '도이 머이'를 통해 대외개방정책으로 경제체제를 전환했다. 이후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외국인투자가 활성화됐고 금융시장 개방에도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이듬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피하진 못했다. 특히 금융시장에선 베트남 국영기업의 부실이 은행의 부실로 전이되면서 자국 은행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 2013년 3월 이 지점장이 하노이사무소장으로 부임할 때에도 지속됐다. 이 지점장은 "당시 여러 국내외 은행이 지점 인가신청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누구도 현지 금융당국의 인가 시점을 예측할 수 없었다"며 "특히 지점인가와 관련해선 우리가 알기 어려운 복잡한 절차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지점장은 가장 먼저 농협을 베트남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또 인가당국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농협은행이 다른 상업은행에 견줘 차별화된 역량으로 베트남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농업분야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현지 금융당국에 적극 소개했다"고 강조했다. 즉 농협은행의 베트남 진출이 한국농협 전체의 역량을 배경으로 양국이 더불어 발전하는데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실제로 이 지점장은 농협은행만의 장점을 살려 베트남 기관들과 협력 사업을 펼친다면 후발주자라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업금융을 기본으로 하고 농업 분야의 정책사업에 참여한다든지, 애그리비즈니스에 금융지원을 하는 방식 등의 사업모델을 개발해 실행하는 방식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사업체와 손을 잡는 방식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이 지점장은 "베트남에서 농협은행 단독으로 사업을 영위한다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지만, 현지 사업체와 협력·상생·융합을 모토로 사업을 도모한다면 베트남 금융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한국 기업과 현지 업체 간 협력 사례. NH농협은행은 지난 2017년 6월 현지 모바일결제업체인 '비모(VIMO)', 한류 콘텐츠 배급사 CJ E&M 베트남법인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NH농협은행

농협이 베트남 아그리뱅크(Agribank:농업농촌발전은행) 및 베트남협동조합연맹과 같은 현지 기관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찐 응옥 칸 아그리뱅크 회장을 만나 △은행 및 비은행부문 협력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투자 농업 △아그리뱅크 민영화 참여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농협금융은 아그리뱅크의 지분 투자도 검토 중이다.

 ◇ "장기적 관점서 현지 고객과 신뢰 쌓아야"

현재 베트남 금융시장이 성숙도가 낮은 상태다. 은행 신뢰도가 워낙 낮아 은행을 이용하는 비율은 전 국민의 30%에 그칠 정도다. 이 지점장은 "현금을 집에 보관하거나 한국산 금고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은행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방증"이라면서 "심지어 계약에 따른 결제 때 많은 현금을 직접 주고받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노이지점장 재직 시절 겪은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한 고객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100억 동(한화 약 5억 원) 상당의 금액을 현금으로 인출하겠다고 요구해온 것이다. 하노이지점은 시재금 보유한도가 낮은 데다 거액의 베트남 동화를 현금으로 갖고 있을 필요도 없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고객 요청에 따라 현지 은행에서 현금을 받은 후, 여러 직원을 동원해 몇 시간에 걸쳐 현금을 세서 고객에게 인출해줬다" 이 지점장의 회상이다.

 이 같은 불편은 달리 말해 베트남 금융업이 발전 가능성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베트남의 산업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도시근로자가 늘고 안정적인 급여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주택 및 자동차 소유 욕구가 커지고 창업 열기도 여느 국가 못지 않게 뜨겁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이 지점장은 "은행이 리테일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선 적합한 리스크 관리를 기반으로 임금근로자의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편익을 제공해야 한다"며 "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민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이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기만 할까. 이 지점장은 금융회사 선택과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며 새겨들을 만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베트남은 상위 몇몇 금융회사가 금융산업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쏠림현상이 심합니다. 지금까지도 부실한 금융회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지 금융회사와 거래 시 신중해야 합니다."

이 지점장은 "또 베트남이 진출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현지 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서 강력한 공권력과 함께 공무원의 권한이 매우 강하다"라며 "더군다나 조직체제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행정절차를 진행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국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한국계 은행의 경쟁력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베트남과 한국의 국민성이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점이 다른 외국계 은행에 비해 현지화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기 업적에 매달려 수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전략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점장은 "긴 호흡을 갖고 현지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현지 고객에게도 상대적으로 선진화된 금융 편익을 제공하게 되면 은행의 수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말  '새롭게 보는 베트남'이란 책자를 출간했다. 자신이 베트남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을 정리해두면 현지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 지점장은 "지점인가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나 투자 절차, 금융 실무뿐만 아니라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며 "베트남에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실용적인 참고서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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