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어떻게] 한화, 끊임없는 도전 끝에 쏘아올린 '희망 불꽃'

'사업보국' 창업정신으로 국내 최초 화약 국산화 성공
과감한 M&A로 4차산업혁명시대 맞는 기술력 확보 앞장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 불꽃축제 현장. 사진=한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신화를 일궈낸 사람과 기업들을 보면 그 노하우와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최고라는 타이틀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최고가 된 이들은 숱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세계파이낸스는 성공한 기업 또는 인물들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은 무엇인지, 그들만의 노하우와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왜/어떻게] 시리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세계파이낸스=주형연 기자]  한화 창업주 현암 김종희 회장은 1952년 조선화약공판 매각입찰에서 23억4568만원에 운영권을 획득한 이후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김 선대회장은 화약이 산업 근대화를 이룰 중요한 도구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다이너마이트 생산을 위해 화약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겸한 인재 발굴에 적극 나선다. 우선 다이너마이트의 제조기술을 익히기 위해 인천화약공장 제조과에 9명의 인원을 영입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의 본질인 니트로글리세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어려움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결과 3년 뒤 인천화약공장에서 니트로글리세린 시험 생산의 시작을 알리는 적색 깃발을 올릴 수 있었다. 적색 깃발은 폭파 작업 중임을 알리는 깃발이다. 직원들조차 위험하다고 말리던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낸 결과 국산 다이너마이트가 1959년 1월부터 판매를 위한 생산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다이너마이트 생산국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한화는 국내에서 불꽃을 가장 잘 아는 기업으로 등극하게 됐다. 2000년부터 가을밤 한강 위를 불꽃으로 수놓고 있는 한화.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불꽃축제 개최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긴 시간동안 불꽃축제를 이어가며 국내 대표 축제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화약 국산화를 이룬 한화그룹의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창업정신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화의 화약 기술력은 여의도 불꽃축제, 서울세계 불꽃축제, 부산 불꽃축제 등 다양한 축제에서 볼 수 있다. 올 초에는 패럴림픽에서도 선보였다.  

현장경영에도 주력하는 김승연 회장. 사진=한화
◆ 과감한 M&A로 사업 규모 확대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한 김 선대회장은 기업이 성공하려면 화약뿐만 아니라 다양산 사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석유화학 분야 진출을 꾀한다. 그는 1966년 제2정유공장 실수요자 선정에 참여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이후 제3정유공장에 재도전한다.  김 선대회장은 화력발전을 건설하면서 필요한 연료 생산을 위해 정유공장 건설을 동시에 추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선 최소 1억 달러의 막대한 건설자금이 필요했다. 김 선대회장은 1968년 9월 30일 발전소 연료공급을 위한 정유사업 경영허가를 획득하면서 발전사업 및 정유사업 동반 진출을 가시화할 수 있었다.

이후 1981년 김 선대회장의 별세로 장남 김승연 회장이 29세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한화'로 사명을 변경했다. 젊은 나이에 총수직에 올라 경영 능력 등에 대한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이러한 우려들은 단시간에 불식시켰다.

김 회장은 선대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일찌감치 신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했다. 그는 태양광과 핀테크 사업을 미래 사업으로 점찍었다.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화큐셀은 장남 김동관 전무에게, 핀테크는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실장에게 맡겼다.

김 회장은 10년, 20년 후 에너지 전환기를 대비할 가장 적합한 토대를 갖추고자 미래 성장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 의리를 중시하는 한화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를 만들며 '수평적 문화' 조성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나며 한화 또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김 회장은 한화바스프우레탄, 한화NSK정밀, 한화기계 허브아이 베어링부분, 한화자동차부품 등 외국사들과의 합작법인 지분을 합작사에 넘기고 빙그레와 경향신문을 계열 분리하는 등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는 1999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구조조정 모범 13개 기업 대표 만찬자리에서 구조조정의 대표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2015년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테크윈(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한화종합화학), 삼성토탈(한화토탈) 등을 1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는 국내에서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으로 꼽혔다. 한화그룹은 2016년에도 방산기업 두산DST(한화디펜스)를 인수하면서 국내 방산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굳혔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원천기술 확보 앞장

"66년 전,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모험과 시도를 주저했다면 오늘의 한화는 없었을 것이다. 한화의 10년 후를 변화시킬 동력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미래가치를 창출할 지식과 원천기술 확보에 앞장서야 한다. 가장 빛나는 성취는 남들이 어렵다고 포기한 길 위에서 시작된다."

한화는 최근 그룹의 경영조직을 쇄신하고 계열사의 독립경영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과감한 M&A의 역사에 담긴 한화의 혁신전략이 4차 산업혁명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화는 경영 효율화와 시너지 제고를 위해 사업 유사성이 높은 화약과 방산 부문을 통합 운영키로 했다. 통합 대표이사는 현재 화약 부문 대표인 옥경석 사장이 내정됐다. 이에 따라 한화의 사업 부문은 화약, 방산, 기계, 무역 4개 부문에서 화약·방산, 기계, 무역 3개 부문으로 재편된다.

특히 옥경석 사장은 김 회장의 혁신과 수평적 조직문화 개혁 의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옥 사장은 지난 2016년 '경영관리 혁신 전문가'로 한화에 영입된 인물이다. '혁신 전문가'로서 한화에 영입된 지 2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한화생명은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한화생명 전략기획담당 임원으로 있는 여승주 사장을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차남규 부회장과 함께 각자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한화케미칼은 사업전략실장을 맡고 있던 이구영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이와 함께 사업총괄 임원으로 선임했다.

또 한화는 앞으로의 경영과제로 '정도경영·고객과의 의리·공정경쟁·협력사 보호'을 꼽으며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투자를 일궈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태양광분야와 대형 인수합병으로 업계 1위 규모로 키운 방산분야에 더욱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사진=한화

j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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