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국 공략·글로벌 권한 강화…은행 국제화의 키"

'亞 쏠림현상'이 부정적? 진출지역 집중은 긍정적
"해외진출시 문화적 유사성 고려…글로벌본부엔 힘 실어야"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5일 명동회관에서 열린 `금융국제화의 현황과 미래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오현승 기자
최근 국내 은행들이 해외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진출국을 새로 늘려나가는 것보다 이미 진출한 곳에서 영업기반을 제대로 다져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사업의 독립성을 높이고 IT기술 등 국내 은행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도 핵심 과제라는 지적이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은 25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국제화의 현황과 과제 심포지엄에서 '국내은행의 해외 영업기반 강화방안' 주제로 발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번 행사는 금융연구원과 한국국제금융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서 연구위원은 정부가 동남아시아 외교를 4강 외교 수준으로 격상하는 등 은행들이 해외영업기반을 강화할 만한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해외점포수는 지난 2005년 113곳에서 지난해 181곳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규모는 276억 달러에서 1049억 달러로 급증했다.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이익률(ROA)는 해외점포(0.8%)가 본점(0.5%)보다 높다.

서 연구위원은 해외 주요 금융회사의 사례를 들며 시사점을 제시했다.

호주의 ANZ은 핵심진출국을 공략한 후 인접국가로 진출 국가를 확대해 성공했다. ANZ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교류가 많은 뉴질랜드를 핵심진출국으로 선정해 공들였다. 지난해 ANZ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이 은행의 수익비중에서 뉴질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이른다. 본국인 호주(49%)의 절반에 이른다. 이후 ANZ은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점포망으로 영업전선을 확대해나갔다.

같은 맥락에서 서 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아시아 쏠림현상'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짚었다. 주변국을 위주로 회사가 진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어느 한 국가에 진출할 때 고정비용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고정비를 낮추기 위한 측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여러 국가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단 베트남과 같은 특정국가에 대부분의 은행이 집중하는 데 대해선 다소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해외진출국 선정과정에선 문화적 유사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서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말레이시아의 CIMB는 자국과 인접해 경제력 교류가 활발한 싱가포르 대신 이슬람금융 측면에서 유사성을 지닌 인도네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CIMB의 해외점포는 인도네시아가 580개로 압도적으로 많고 태국과 싱가포르에 각각 165곳, 2곳씩 점포를 두고 있다. CMIB는 동남아시아 정착 후 종교적 유대관계를 지닌 중동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서 연구위원은 "말레이시아의 경우 이슬람국가라는 점에서 한국과는 문화적 차이점을 갖는다는 점도 국내 은행들이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본부에 대한 체계적 지원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일본 1위 은행인 MUFG는 글로벌부문의 독립성과 권한을 높여 해외영업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경우다. MUFG는 글로벌본부에서 해외사업을 일괄적으로 담당한다. 서 연구위원은 "MUFG는 인사와 예산 등 주요 결정을 글로벌부문에서 맡다보니 의사결정 과정이 빠르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일정 규모를 넘어선 여신을 해외점포에서 신청받았을 때 국내 은행 본점에서 이를 제대로 심사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잦은 순환인사를 지양하고 글로벌부문 인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서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패널토의에선 금융국제화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문우식 서울대 교수는 "국내 은행들의 진출국은 대부분 아시아 지역인데, 이들 국가가 후진국이라서 투자자보호라든가 법제도 미비성 등을 감안하면 거래비용이 상당히 클 수도 있다"며 "국제전문인력 양성 역시 국제화를 위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은행의 해외영업활동을 뒷받침할 정부의 노력도 주문했다. 문 교수는 "해외 영업과정에서 어떤 기업에 대출해야할 지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현지기업에 대한 정보나 정보획득 채널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 뒤 "정부가 나서서라도 아시아지역 등의 기업에 대한 DB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진출 시 어떤 지역에 진출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영업을 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국내 은행들이 국내에서 가진 경쟁력을 특화해 해외영업에 나서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손상호 금융연구원 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넘어가는 시점에선 금융잉영자 금융자산(금융잉여자산)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데 이렇게 축적된 자산을 국내서만 운용하기엔 한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고령화 및 저금리의 장기화 속에서 한국의 은행들은 해외 현지화전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희율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경기대 국제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과 교민을 중심으로 한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영업방식이 수 년 새 현지금융사를 인수해 현지인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수익성과 성장잠재력 높은 지역으로 적극 진출하는 전략이 어떠한 과실을 가져다줄지, 또 어떠한 리스크가 있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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