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경기'에 대한 입장, 꼭 중립적이어야 하나

경기 불안하기는 하지만 견조한 흐름, 대외건전성 양호하지만 美금리결정 우려돼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한 신중한 판단으로 해석되면서도 뚜렷한 방향성 제시 못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한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국내 거시운용의 한 축을 담당하는 통화당국이 가장 중요한 경기논란을 눈치 보듯 피해가도 되는 것일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4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은 시장에서 이미 예상한 대로였지만 국내 경제의 상황에 대해서는 중립적 판단이 기조를 이뤘다.

더욱이 거시운용의 리스크 부분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스탠스를 동시에 내놓기도 했다.

연구계 한 관계자는 "한은은 통화당국이자 양적 질적으로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인 만큼 정확하고도 현명한 판단을 내놔야 하는데 중립적 견해에 머물러 상당히 아쉽"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흐름을 선행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견조한 성장세인데 불안해?

금통위는 가장 중요한 경기와 관련해 불안하기는 하지만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 방향이 아니라 양쪽을 모두 고려한다는 의미여서 상당히 중립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에 벌어진 경기 논란을 살짝 피해간 듯하다. 기재부와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며 상황을 지켜보자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기와 관련해서 금통위는 이날 발표한 5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을 통해 "국내 경제는 설비투자가 다소 둔화되었으나 소비와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부분을 인정하지만 해외 수출과 함께 소비가 양호해 성장이 견실하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수출의 경우 미국 등의 무역보호장벽의 영향과 함께 반도체수퍼사이클의 중단 가능성이 작용하고 있는 만큼 공고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은 대부분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양산이 본격화될 경우 지난해부터 시작된 활황은 과거의 반도체착시와 유사한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7% 증가한 소비도 일견 활발한 듯 보이지만 설비투자가 선행되고 건설 등이 활기를 띄어야 지속될 수 있다. 더욱이 환율 변동성이 커진다면 수입물가가 올라 소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경로분석이 있었다면 공개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에 비해 커져가는 리스크, 얼버무려야 하나

한은은 사실 과거에 비해 리스크가 꽤 많이 늘어난 사실을 다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에 대한 불안감, 부채 일부의 질 악화, 최저임금의 문제, 한미금리역전, 국제 유가 급등 등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지난 4월의 전망을 수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낙관할 수는 없다고 한 것도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에 유의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에 대한 낙관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결문에 이어 다시 발표한 것이다.

신흥국 불안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 폭이 크고 외환보유액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며 대외 채무도 단기 외채 비중이 낮은 등 대외 건전성이 양호해 일부 신흥국 불안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다음 달에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이 신흥국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사실 신흥국 불안은 남의 나라 일은 아니다.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인도마저 루피화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최저임금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보면 최저임금을 올리면 비용 절감을 위한 고용 조정 유인이 올라가지만 최근 고용부진은 최저임금 영향뿐 아니라 일부 업종의 구조조정이나 지난해 기저효과도 있다"면서 "여러 요인이 혼재돼 있어 최저임금 인상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영향 줬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구체적으로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멘트로 해석된다.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 역전을 얼마까지 용인할 생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경제 펀더멘털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경제 펀더멘털이 얼마나 좋으냐에 대한 부분은 불안한 성장세로 갈음한 듯해 설명이 궁색한 편이다.

결국 이 같은 흐름의 통화정책과 판단이 나온 데에는 다른 요인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임정빈 선임기자 jblim@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egye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