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파국] 누가 그리스 위기를 불렀나

그리스 상층부의 잘못된 정책과 과소비
EU 트로이카의 과도한 긴축요구도 한 몫

그리스 국민이 압도적인 ''오히''(반대) 투표로 채권단의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함에 따라 그리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위기가 누구의 책임일까.

국제사회에서는 채권단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집행위원회(EC)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집행한 과도한 긴축정책이 그리스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과 그리스인들의 도에 넘는 과소비와 공공부문의 부패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그리스의 공무원과 기업인 등 상층부의 부패와 함께 전반적으로 만연한 과소비가 이번 사태를 불렀고 트로이카의 과도한 긴축처방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그리스 국민의 과소비가 파국을 불렀다기보다는 그리스를 이끈 상층부의 부패와 잘못된 정책, 과소비가 현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트로이카의 과도한 긴축조치도 한 몫을 했다"고 지적했다.

◆ 공공부문 부패와 과소비가 원인

독일 등 주요 채권국을 중심으로 현 위기의 책임은 먼저 그리스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는 자격조건에 미달했지만 다소 무리해 2001년 유로화 사용국에 가입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에 따르면 그리스는 유로존 가입 이후 올림픽 특수가 맞물리면서 임금이 2배 급증했고, 최저임금도 70% 상승했으며, 수출은 줄고 수입은 크게 늘어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다.

신문은 유로존 가입 이후 그리스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급증한 부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유로존 가입 전 90%에서 140%대까지 급등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리스는 이후 2010년 유로존 가입을 위해 재정통계 등을 조작했던 게 드러나면서 처음으로 트로이카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

과도한 그리스 공공부문의 규모와 이에 따른 부패도 그리스 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적됐다. 독일 언론들은 공공부문 규모가 가장 컸던 2010년 고용노동자 중 거의 20%가 공무원인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과도한 상여금과 연금혜택, 그리스의 주력 산업인 관광·해양업계와의 유착과 그에 따른 부패 때문에 도마에 올랐다.

디벨트는 "그리스의 위기는 긴축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빚을 내, 분에 넘치는 소비와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라며 "그리스의 부채비율 급등은 자기 형편을 훨씬 넘어선 생활을 누린 국가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그리스를 이끈 지도층의 잘못된 정책이 그리스를 파국으로 이끈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트로이카의 긴축 요구에 경제 악화 및 생활고 심각

IMF의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작년 그리스의 GDP은 1865억 유로(약 233조원)로, 트로이카의 개혁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2010년 2302억 유로(약 287조원)의 80%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그리스의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비율은 작년 174%로 2010년의 143%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트로이카는 그리스가 금융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GDP대비 부채비율이 110% 선에서 관리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의 실업자가 2010년 대비 100만명 늘어나 실업률이 25.7%로 치솟았고, 특히 청년 실업률이 2010년 30%에서 작년 55%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빈곤인구는 2010년 27.6%에서 2013년 34.6%로 늘어난 반면에 최저임금은 26%, 평균임금은 38%, 평균연금은 45%가 각각 삭감됐다. 자살한 사람 수는 35%, 우울증에 걸린 사람 수는 270% 각각 증가했다.

그리스의 경제상황이 이렇게 악화하면서, 트로이카의 개혁프로그램이 실패해 그리스가 다시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트로이카는 2010년부터 그리스에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고, 그리스는 공공부문 임금과 연금 삭감, 정부지출 감축, 증세 등을 추진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은 기고문에서 "5년전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강요한 프로그램은 국내총생산의 급감과 청년실업률의 급등 등 그 어떤 경기침체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트로이카가 전망과 처방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뉴욕타임스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그리스가 강력한 긴축조치를 취했는데도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 경제가 붕괴됐기 때문"이라며 "긴축정책이 수익도 함께 끌어내렸다"고 지적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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