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재석 종편행과 삼성생명 GA출범의 공통점

지난 달 초 ‘국민MC 유재석 종편행’이라는 한 문장의 뉴스가 방송계의 큰 이슈가 되면서 수많은 후속기사들이 쏟아졌다. 프로그램 장르는 무엇이며, 어떤 기획인지 호흡을 맞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려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10여 년 전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시절부터 호흡을 맞춘 PD가 캐스팅했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유재석이 종편을 택했다’는 것과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PD가 섭외했다’는 것, 단 두 가지 사실이 수많은 기사를 재생산하게 하며, 방송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됐다.

보험업계도 비슷한 이슈가 있다. ‘삼성생명 자사형 GA(독립보험대리점)설립’이라는 한 문장의 소식이 큰 이슈가 되면서 수많은 후속기사들이 쏟아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은 자본금 400억, 소속설계사 500명 규모로 이르면 이달 출범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 전부다.

정치적 진보성향의 방송인인 김제동이나 진중권도 태생적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종편에 출현한다. 이미 종편에 누가 출연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종편이 공중파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서도 GA는 전속설계사 조직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이 올해 초 자사형 GA에 진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생명 이전에 업계 5위 미래에셋생명, 외자계 중에서 가장 활발히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라이나생명 등이 자사형 GA에 진출했다. 손해보험업계는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AIG손보 등이 자사형 GA를 운영 중이다.

‘유재석’과 ‘삼성생명’이 아니었으면 새로울 것이 없어 단신에 불과했을 뉴스가 업계에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움직이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련 업계가 이토록 호들갑을 떠는 것은 시장에서 이들이 가진 상징성과 맥락 때문이다.

일전에 김교석 방송 칼럼니스트가 지적한 바 있듯, 유재석의 종편행은 기존 공중파 방송과 예능 패러다임의 몰락을 3가지 부분에서 상징한다.

첫 번째는 공중파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공중파부터 유행이 시작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공중파 예능은 창의성, 화제성 등에서 종편에 밀렸다. 종편이 유행을 시키면 그제야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대응의 전부였다. 심지어 예능 광고주들이 가장 관심을 쏟는 2030세대와 공중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경규, 신동엽과 같은 최고 선수들이 종편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공중파에 대한 충성도는 갈수록 더 낮아질 것이다.

두 번째는 연출을 맡는 PD의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유재석을 캐스팅했다고 알려진 윤현준 PD는 ‘쟁반노래방’부터 ‘비정상회담’, ‘크라임씬’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PD의 이름이 아닌 연출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기대를 갖게 한다. 더 이상 예능에 흥행보증수표는 없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시장의 변화 때문이라면 세 번째는 유재석 본인의 문제다. 유재석은 방송 능력은 물론 방송 외적으로도 호감도가 높다. 자신을 낮추고 출연자들을 높여 웃음을 만드는데 천부적 재능이 있다. 하지만 10년 정도 익숙한 모습을 보다보니, 시청자들은 유재석의 모습에 질려가고 있다. 유재석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고착화 되어 버린 것이다.

삼성생명의 자사형 GA 진출도 보험업계의 패러다임 몰락을 3가지 부분에서 상징한다.

첫 번째는 인지도와 조직력만으로 업계를 주도할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5일 출시한 ‘미래를약속하는변액연금보험’은 교보생명의 ‘미리보는내연금’과, 6월 8일 출시한 ‘나만의선택보장보험’은 미래에셋생명의 ‘생활의자신감’과 상품 구조가 흡사하다. 지난 5월 내놓은 ‘사망보험금선지급전환특약’도 신한생명의 ‘연금미리받을수있는종신보험’의 핵심기능을 차용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모방상품은 개발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된다. 따라서 상품력이 더 좋거나 가격이 저렴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 등으로 상품력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삼성생명은 비싼, 다시 말해 같은 보장을 받을 때 납입해야 하는 보험료가 높은 상품을 브랜드 인지도와 조직력으로 판매해왔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품력이 좋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GA의 가능성이다. GA소속 설계사가 보험사 소속 전속설계사를 넘어설 정도로 GA시장은 확대되었다. 보험소비자 측면에서 GA의 이점은 여러 보험상품을 비교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 측면에서도 전속사보다 GA가 유리하다. 추천할 상품이 없어 가망고객을 놓치는 일이 없으며, 모집수수료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챙길 수 있다.

GA성장에는 온라인이라는 배경이 있다. 온라인을 통해 통제되어 있던 보험의 정보도 공개되기 시작했고, GA소속 설계사들이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활용했다. 정보가 부족할 때는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상품을 선택할 때 브랜드 인지도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넣는다. 유명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가 공개되면 소비자들은 가성비를 따진다. 결국 브랜드 인지도와 조직력만으로 사세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보험시장의 변화 때문이라면 세 번째는 삼성생명 자체의 문제다. 삼성생명은 50년 넘게 보험업을 영위하면서 조직이 고착화 되어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전체 임직원 약 6700명 중 1000명에 달하는 인원을 감축했다. 하지만 아직도 차장급 이상이 많은 항아리형 구조다. 업무 실무자보다 관리자가 많다. 관리자가 많은 조직은 실적보다 정치가 승진에 열쇠가 되는 일이 많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큰 신규부서에 배치되기보다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서에 가길 희망하는 확률도 증가한다. 이는 신규 채널이나 신규 사업, 신개념 상품 개발 등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된다. 넘볼 수 없는 업게 1위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이 다른 보험사의 성공을 모방하는 이유다.

영업조직도 고착화되어 있다. 삼성생명은 3만명이 넘는 전속설계사를 보유하고 있고, 전속설계사 조직이 삼성생명 수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전속설계사들은 또 다른 신규 채널이 생기는 것이 달갑지 않다. 경영진 입장에서 전속설계사가 가장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 된다. 

삼성생명이 자사형 GA에 진출하는 것도 더 이상 전속설계사만으로 독주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또한 조직 내부에서부터 변화할 수 없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형식적으로라도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일종의 ‘선긋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90년대 40%를 웃돌던 시장점유율은 현재 3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다. 고비용의 조직구조 때문에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도 쉽지 않으며, 전속설계사 조직을 버리지도 못한다.

결국 삼성생명은 자사형 GA를 통해 자사 상품 판매는 유지하면서 손해보험 상품은 물론 IFA 시행 이후 증권 등 투자상품까지 판매해 보험영업 이외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유재석이 공중파에서처럼 종편에서도 여전히 시청자들을 잡아 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종편은 공중파의 패러다임을 깨부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공중파에서처럼 깔끔한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삼성생명이 GA에 진출해 소비자들을 잡아 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GA 역시 전속채널의 패러다임을 깨부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생명 자사형 GA를 만들면서 삼성생명 이외의 생명보험사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여전히 경쟁사와 상품 비교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겠다는 뜻이다.

유재석과 삼성생명 둘 다 변화에 성공할지, 아니면 일부만 성공할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지 예측할 수는 있어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김승동 기자 01087094891@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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