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임박] 침몰하는 그리스 경제

어설픈 유로존 통합·모럴해저드가 최악의 상황 불러
그렉시트 시 그리스 경제 파멸
디폴트 면하려면 ‘4대 관문’ 통과해야

다시 찾아온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디폴트와 그렉시트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그리스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국민들의 과감한 긴축 및 약속을 지키려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은 시리자 정권의 퇴진이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리스 위기의 원인

그리스가 디폴트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그리스 국민들의 모럴해저드와 재정통합이 빠진 어설픈 유로존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그리스가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거부하자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도 다음달 5일 국민투표를 마칠 때까지 구제금융을 연장해달라는 그리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로써 채권단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30일로 종료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ELA) 한도를 890억유로로 동결했다.

현재 그리스는 30일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15억3000만 유로(약 1조9000억원)의 빚을 갚아야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 채권단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재개하거나 ECB가 긴급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 디폴트를  피할 수 없는 상태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는 결국 그리스 정부가 무책임하게도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리스의 정권을 잡고 있는 시리자는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이 너무 가혹하다며, 약속을 지키기를 거부했다. 이미 대규모의 부채 탕감에다가 막대한 유동성 지원까지 해준 유로그룹 등 채권단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그리스 정부와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배째라’ 전략을 통해 부채 탕감을 노리는 듯하다”고 예상했다. 그는 “그리스 시민들은 긴축을 싫어하면서도 유로존에 남기는 원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과거 ‘IMF 위기’ 당시 한국이 지독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시행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그리스 시민들은 ‘반 긴축’을 표방하는 시리자를 적극 지지하지만, 동시에 그렉시트 반대 의견이 67.8%에 달한다. 유로존의 풍요는 누리고 싶지만, 빚은 갚기 싫다는, 전형적인 모럴해저드인 셈이다.

또 유로존의 통합이 너무 느슨해 그리스의 거듭된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도 있다.

화폐뿐 아니라 재정정책까지 통합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근본적인 결함을 남겼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의 잘못된 재정정책 남발을 방기하는 동시에 또 통화 절하는 못하게 막아 위기를 키운 것으로 진단된다.

현재 유로존 회원국은 통화와 기준금리 정책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정통합은 없는 상태다.

저명한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유로화가 자격이 충분한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뿐 아니라 통합 재무부까지 만들어 각국의 재무정책을 총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화폐 통합만 이뤄진 상태에서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원국들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악순환을 일으킴에 따라 남유럽발 재정위기는 시작됐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 5월 첫번째 구제금융을 받은 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자금만 모두 2400억유로가 넘는다. 민간부분 부채에 대한 대규모의 채무조정도 단행됐다.

특히 위기 후에도 그리스는 긴축 정책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유로존을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통합 재무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그리스 나름대로 “유로존이 독일만을 위한 구조”라고 비판한다. 경제 위기에 빠진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이용해 위기 탈출을 노리지만, 유로화 사용국인 그리스는 그러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990년대에는 핀란드가 자국 통화 마르카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면서 ”하지만 그리스는 유로화 사용국이란 ‘멍에’ 때문에 이 방법을 쓸 수 없었고, 위기를 더 키웠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이후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은 25%나 감소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는 109%에서 180%로 급증했다.

반면 독일은 유로화 탄생으로 위기 없이도 통화 절하 효과를 누려 수출이 크게 늘었다. 현재 독일과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경상수지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유로존 위기 해결방안으로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유로존 은행의 자기자본 보유 수준을 대폭 상승, 유로 국가들이 연대 보증을 제공하는 유로본드 설립, 규모가 작은 국가에 대해 ''질서 있는 파산 정리''를 허용 등이다. 소로스는 특히 독일에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독일은 거꾸로 재정통합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질임금을 깎는 등 노동시장을 개혁했고 복지를 줄이는 등 각 회원국들이 스스로 구조 개혁을 감행하라는 것이 독일의 요구다.

이는 재정이 통합될 경우 독일 국민들이 낸 세금이 다른 나라로 흘러갈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렉시트 시 그리스 경제 붕괴될 듯

그리스 정부가 호기롭게 채권단과의 협상을 거부한 것과 달리 실제로 디폴트와 그렉시트가 일어날 경우 그리스 경제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여행사 등 서비스 업체 등의 연이은 파산으로 대량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그리스의 전체 실업률은 25%, 청년 실업률은 50% 수준이다. CNBC에 의하면 연금이 가계전체를 책임지는 유일 소득원인 18∼34세의 캥거루족 비율도 63.5%에 달한다.

이 실업률이 더 크게 뛰어오르는 것은 물론 간신히 직장을 지킨 사람들도 임금 삭감, 나아가 임금체불에 시달릴 것으로 짐작된다.

또 은행 등 금융기관의 파산은 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는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관광, 해상운수 등 3차산업 중심의 생산구조(3차산업 57.2%)여서 대부분 재무 구조가 허약한 편이라 충격을 이겨내기 어렵다.

주로 선박 운송업과 농수산물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는 기업들도 그렉시트 시 교역 급감을 피하기 어렵다. 디폴트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으면, 소규모라도 무역 결제 자체가 어려워져 수출입이 마비될 위험이 높은 탓이다.

연간 관광객이 현재의 1500만명에서 급감해 관광산업 역시 무너질 수 있다.

이미 그리스 정부는 국세 수입이 예상을 크게 밑돌아 임금 및 연금 체불을 면하려면 매달 15억∼17억유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돈은 그렉시트 시 급증할 테지만, 유로존을 벗어난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없다.

따라서 대규모의 임금 및 연금 체불을 면할 수 없고, 그리스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물가가 급등할 것이다.

그렉시트가 일어나면, 유로화 대신 옛 화폐인 드라크마를 재도입해야 하는데, 그 경우 최대 50%까지 통화 가치가 평가 절하될 것으로 여겨진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유로화 도입 후 통화 평가절상 덕에 그리스 국민들이 누려왔던, 어울리지 않는 풍요로운 생활도 마감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장률 또한 망가지고, 더 심한 긴축이 닥쳐올 수 있다.

그리스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1년(-8.9%) 이후 3년간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다가 지난해(0.8%)에야 겨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올해 외국계 금융기관 20곳이 전망한 성장률(0.50%)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디폴트가 일어날 경우 단숨에 마이너스성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디폴트로 가면 그리스의 성장률은 급락하고 물가는 오르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그는 "그리스 국민은 지금보다 더 강한 긴축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그렉시트로 그리스가 얻는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하면 당장 GDP의 1.8배인 공공부채를 갚지 않아도 되고 통화가치 폭락으로 무역에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더 큰 상태다. 때문에 그리스 정부의 반(反)긴축 정책에 그리스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면서도 태반이 여전히 유로존에 남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신 연구원은 "그렉시트로 제일 손해를 보는 것은 그리스"라며 "그렉시트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그리스 국민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로존 탈퇴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렉시트 피하기 위한 ‘4대 관문’

외신에 따르면, 그렉시트를 면하기 위한 ‘4대 관문’은 ▲국민투표에서 찬성 승리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사임 및 조기총선 실시 ▲총선에서 채권단 합의 찬성파로 정권 교체 ▲채권단과 합의 도출 등이다.

우선 다음달 5일 열리는 국민투표에서는 찬성 〈봉?높은 것으로 진단된다.

가장 최근 조사인 24∼26일 카파 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채권단의 방안에 찬성하는 의견이 47.2%, 반대는 33.0%로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 또 응답자의 67.8%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잔류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렉시트를 바란다는 응답자는 25.2%에 그쳤다.

투표에서 국제 채권단과 합의에 찬성하는 표가 다수로 나오면 이는 합의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내각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임으로 인식돼 현 내각 사퇴 및 조기 총선 실시로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세 번째 관문인 총선에서 합의 찬성파로 정권이 교체될 지다. 여전히 그리스 국민 다수는 가혹한 긴축조치의 고통을 겪기 싫어해 시리자가 제일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만약 시리자 정권이 재집권할 경우 채권단과 재협상 타결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채권단은 시리자 정권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합의 찬성파가 집권하면, 채권단과의 재협상 및 합의 도출은 쉬워 보인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은 그리스 디폴트에 빠지기 전에 해치워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그리스 경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지원하는 긴급유동성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ECB에 대한 채무 35억유로(한화 약 4조4000억원) 의 상환 만기인 내달 20일까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 상환에 실패하면, 디폴트를 피하기 어렵다.

다만 ECB가 기본적으로 그렉시트를 피하고 싶어하기에 새 정권 수립으로 재협상 전망이 밝아질 경우 합의에 필요한 기간만큼 소규모 구제금융 등을 계속 지원해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결국 채권단의 신뢰를 잃은 시리자 정권이 완전히 물러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 국민들의 모럴해저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리스 디폴트가 현실화되더라고 국내 금융사에 미치는 여파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그리스 위험노출액(익스포저) 잔액은 총 11억8000만달러(한화 약 1조3284억원)로 집계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는 금융권 전체 익스포저의 1.3%에 불과하다“며 ”그리스가 디폴트 鑽꼭막?치닫더라도 국내 금융사들이 직접적으로 받는 손실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 금융사의 그리스 익스포저는 전액 수출입은행의 선박금융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금융은 결국 선박을 담보로 잡고 있기에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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