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주 입법조사관 "보험사 자기손해사정 금지해야"

김정주 국회 입법조사관
지난 9월 30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회사는 자체적으로 고용한 손해사정사가 업무를 담당하게 하거나 이해관계를 가진 손해사정업자에게 해당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보험금이 보험회사에 유리하게 산정될 수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만난 김정주 국회 입법조사관은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은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관심을 모은다.

김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10월, 한 국회의원실의 조사 요청을 받고 자료를 수집하던 중 손해사정제도에 문제점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며 "모은 자료를 토대로 이슈와 논점이라는 보고서를 쓴 게 언론에 보도가 됐는데 손해사정사협회, 몇몇 손해사정사들이 찾아와서 동의 및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하는 등 관심을 보여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입법조사관과의 일문일답.

- 현행 손해사정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현재 손해사정사제도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보험업법에서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을 허용하고 있고 둘째,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 현행 보험업법 제189조 제3항을 보면 손해사정사로 하여금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는 행위를 열거하면서, 동시에 법에서 정하지 않고 있는 금지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험업법 시행령 제99조에서는 보험사에 고용된 손해사정사나 보험사 자회사 소속 손해사정사의 행위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의 적용을 배제한 상황이다. 이 두 요인은 국내에서 손해사정사 제도가 왜곡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우월한 자본력을 가진 보험사가 손해사정을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사정시장이 보험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위탁 손해사정사나 독립 손해사정사들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한 보험사가 불공정하게 손해사정을 해도 아무런 법적 제약이 없다. 이 때문에 보험소비자들의 민원이 생겨나는데, 위탁 손해사정사들은 보험사와 재계약을 맺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보험사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독립 손해사정사들이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옹호해 줘야 하는데 시장 내에서 독립 손해사정사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일감이 적다 보니 영업규모가 영세하다. 변호사법에서 변호사 이외의 자가 보험계약자를 대신해 보험사와 화해나 중재를 하게 되면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이용해 변호사나 보험사, 심지어 보험사 편에 서 있는 위탁업체들까지 독립 손해사정사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어 독립손해사정사들이 손해사정시장 내에서 제대로 성장해 나갈 수 없는 환경이다.

- 현행 제도 개정 이전의 손해사정제는 어떠했나.

▲ 국내에서 손해사정사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이 1977년 보험업법 개정 때다. 당시 법조항을 보면 손해사정사가 보험사에 소속돼 있든 말든 간에 모든 손해사정사들에게 ''허위손해사정'' 즉 고의로 진실을 숨기거나 허위로 손해사정을 하는 행위를 법에서 업격히 금지했다. 이를 위반한 손해사정사들에 대한 처벌도 매우 강했다. 당시 법 입안자들이 손해사정사들의 공정한 손해사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 현행 제도는 언제 바뀌었고, 이전 제도와 어떻게 다른가.

▲ 지난 2003년에 보험업법이 개정되면서 이 허위손해사정 금지 조항이 법에서 빠지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법조문의 형태가 바뀌었다. 시행령에 예외를 허용하면서 보험사가 불공정하게 손해사정을 하는 경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의 보험업법과 보험업법 시행령의 내용은 본래 손해사정사 제도가 도입된 취지를 완전히 몰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보험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다.

- 독립사정사에게 맡기는 손해사정 비율이 전체 보험금 지급 대비 몇 %정도 되나.

▲ 사실 금융감독원에 이러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금감원에서도 이러한 자료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간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에서도 손해사정사 문제는 워낙 민감한 것이고 보험사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쉽사리 개선하려는 엄두를 못 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손해사정사들에 대한 감독이나 규제체계가 극히 미비한 상태이다.

- 우리나라의 손해사정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가진 미국에서는 어떠한 상황인가.

▲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보험사에 소속된 손해사정사와, 보험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손해사정사, 그리고 보험계약자가 업무를 수임받아 활동하는 독립 손해사정사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재밌는 것은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보험사의 불공정한 보험금 지급문제가 지난 1970~80년대부터 큰 사회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주 법률에서는 보험사의 불공정 손해사정행위에 대한 강한 금지 및 처벌규정들을 두고 있다. 또한 독립 손해사정사라는 별도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행동준칙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 현행 손해사정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 ''고지''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데.

▲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에 대한 제한과 함께, 보험소비자에 대한 고지의무 강화는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다. 보험소비자가 본래 알아야 할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고, 의무적으로 고지가 이루어지면 손해사정시장 자체가 커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손해사정을 한번 받아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 외부 손해사정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현재 독립 손해사정사도 많이 없지 않나.

▲ 물론 외부 손해사정사를 찾아가는 게 힘들고, 비용도 보험소비자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면 당연히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보험소비자가 쉽게 외부 손해사정업체에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비용도 보험사가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계약자에게 생·손보험협회나 한국손해사정협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여기로 연락하면 업체를 알려줄 것''이라며 ''거기에서 손해사정 관련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 독립손해사정사들의 역할이 늘어나면 문제가 상당히 해결되는지.

▲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을 제한하는 것과 더불어 손해사정사 보수체계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독립업체들의 보수구조가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의 약 10%를 받는 구조로 돼 있는데, 보험금을 많이 타낼수록 수수료 역시 높아지므로 종종 보험사기의 원인 제공을 한다. 현재 독립 손해사정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율제 형태의 보수체계 대신 정액제 형태로 보수체계를 가져가야 한다.

또한 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체계로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독립업체들도 굳이 보험금을 부풀려 보험사에 청구할 유인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손해사정사들에 대해 표준화된 손해사정 수수료 외의 사례금을 보험사나 보험계약자로부터 받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히 금지할 필요가 있다. 보험사 소속 손해사정사 역시 이 기준에 의거해 보수를 받아야 하고, 손해사정 수수료 외의 답례를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

- 고지 의무와 함께 명시돼야 할 것은.

▲ 자회사를 포함한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을 제한하는 자기손해사정에 대한 엄격한 법적 제한이 이뤄지고, 현행법에서 불공정 손해사정 행위 금지의 원칙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손해사정사들의 손해사정업무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나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토록 하는 조항이 법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 현행 손해사정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역할은.

▲ 금융감독원에서는 위탁업체나 독립업체들의 재무정보에 대해 세밀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금감원에서 업체들의 목록만 가지고 있지 각 업체에 손해사정사가 얼마나 근무하고 있는지, 이들이 수수료로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 독립업체들에게 일감을 몰아준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을 제한하기에 앞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업체들의 현황에 대해 당국에서 먼저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 마지막으로, 직접 입안을 한다면 어떻게 발의하겠나.

▲ 만약 입안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다음과 같이 입안할 듯하다.

첫째,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권한을 보험계약자가 외부 손해사정을 포기한 건으로 제한하고, 고용된 손해사정사의 임무는 외부 손해사정서에 대한 검증 또는 보험계약자가 외부손해사정을 포기한 건에 대한 손해사정으로 한정해야 한다.

둘째, 보험계약자에 대한 고지의무를 강화하고, 이를 위반한 보험사에 대한 처벌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등은 보험계약자가 외부 손해사정업체에 쉽게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셋째, 모든 손해사정사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보수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법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손해사정수수료 외에 여타 금전적 보상을 손해사정사가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손해사정사가 작성하는 손해사정서의 법적 효력을 강화하고, 이를 거부하는 보험사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손해사정서의 법적 효력을 강화할 경우 보험사의 입장에서 불공정하게 작성된 사정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험협회·손해사정협회·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별도의 분쟁조정기구를 설립해 보험사들이 제도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종진 기자 trut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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