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금융사 지배구조 혁신 나섰다

사외이사 전문성·다양성 강화
CEO승계 프로그램 만들고 보상체계도 합리화해야
연차보고서에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시장 감시 기능 확대

최근 ''KB 사태'' 등으로 금융사 지배구조의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이 엄격한 통제에 나섰다.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공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주주와 시장의 압력을 늘려 ''최고경영자(CEO) 리스크'' 등을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사외이사 전문성·공시 기능 ''부족''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0일 열린 금융발전심의회에서 "금융사 지배구조의 외형은 글로벌스탠다드에 근전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CEO승계 리스크, 사외이사 권력화 등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은행지주사나 은행 사외이사들의 전문성이 낮다"며 "또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발전심의회에서 발언하는 신제윤 금융위원장

현재 은행지주사 이사회 경우 전체 이사 68명 중 51명이 사외이사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사외이사 비중이 너무 높다 보니 오히려 CEO의 전횡을 허용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경영진 측근이 사외이사에 임명되면서 거수기구화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또 사외이사 구성이 특정한 공통의 배경이나 직업군, 특히 학계 중심으로 쏠리면서 자기권력화하고, 주주 이익 대변에 소홀한 상태다. 현재 은행지주 사외이사의 42%가 학계 출신이며, KB금융지주는 70%나 된다.

때문에 사외이사들의 활동과 책임성은 낮으면서 과도한 보상 등 특권만 누리고 있다고 금융위는 판단했다.

반면 사외이사의 역할을 평가할 수 있는 내부 및 시장 등의 외부평가 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신 위원장은 아울러 "금융사 CEO 승계절차의 구체성과 투명성이 부족해 늘 CEO 리스크가 잠재돼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금융사 이사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CEO 승계계획이나 후보군 육성 등을 경영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금융회사 자율로 운용 중인 CEO 승계계획에는 선임 절차, 요건, 주체, 후보군관리, 방법 등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 있어 형식적으로만 운용되고 있을 뿐이다.

CEO후보추천위원회도 일회성으로만 운영돼 상시적인 관리가 미흡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CEO 부재 등 긴급상황에서 대행자 선임 절차 등 역시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경영공백'' 기간만 늘리고 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등기 집행임원이 1명에 불과하다 보니 임영록 전 회장 사퇴 이후 법원인가를 받아 대행자를 새로 선임하는데 1개월이나 소요됐다.

◆허약한 이사회 감시 기능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 주주와 시장 및 금융감독기구에 의한 이사회 감시 기능이 매우 허약하다.

이는 주로 주주와 시장이 지배구조 정책과 규정, 작동과정과 결과(실패 포함) 등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 공시 체계가 취약한 데서 비롯된다. 주주가 경영진뿐 아니라 사외이사, 이사회의 구성의 적정성을 인지하고 평가, 시정하기 위한 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금융지주사 이사회의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통할 기능이 부족하고 자회사 경영 및 위험관리에 대한 투명성, 책임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 등은 사외이사와 성과보상 모범규준 등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배구조법 제정안은 2년 넘게 국회 법안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라고 전했다.

신 위원장은 "금융사의 지배구조 실패는 한 회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까지 해칠 수 있는 만큼 획기적인 개선 및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 통제 강화 

따라서 금융사 지배구조의 桓湧岵?혁신을 위해 금융위는 3개월간 전문가 등과의 의논을 통해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 이날 발표했다. 
(자료=금융위원회)

신 위원장은 "금융당국이 큰 틀의 공통 기준을 제시하고, 이어 금융사 스스로 촘촘한 내규를 규정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범규준은 우선 주주, 금융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이익을 반영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이사회의 책무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대주주 및 임원과 금융회사 이해상충 감독, CEO승계, 위험관리 및 내부통제제도 등을 추가로 명시했다.

이를 위해 이사회가 특정한 공통의 배경을 공유하거나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도록 이사회 구성에 대해 ''다양성의 원칙''을 신설했다.

특히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과 전문성이 담보되고, 자기권력화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사외이사의 ''핵심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금융회사 스스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공개하도록 했다. 사추천위 역시 구성의 다양성을 명시하고, 후보군을 상시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김 국장은 "현재 사외이사 후보군 관리 시스템이 미비해 CEO나 기존 사외이사 추천에 의존하고 있다"며 "투명한 기준을 마련하면, 사외이사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사외이사는 임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축소했다. 연임을 해도 5년 이상 근무는 불가능하다. 다만 보험사, 금융투자회사, 여전사 등 제2금융권은 현행 임기 3년을 유지한다.

사외이사에 대해 매년 자체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2년마다 외부기관에 의한 평가를 권고할 예정이다. 김 국장은 "장기적으로는 의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인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경우 사외이사 복수 겸직이 금지된다.

더불어 앞으로는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사외이사 추천과 활동 및 보수 등을 상세 공시해야 한다. 특히 개인별 보수내역과 여타 경제적 이익도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김 국장은 "금융사 경영실태평가 시 사외이사 적격성 평가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CEO 승계체계 확립·보상체계 합리화

금융위는 모범규준에서 CEO승계 및 후보군 관리업무를 이사회 상시업무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촘촘하고 세세하게 CEO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CEO의 궐위, 사고시에도 신속히 대행자 지정을 포함한 비상승계 상세히 규정토록 했다.

특히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전담부서의 지원을 받아 CEO후보군을 발굴하고 관리해야 한다.

모범규준에서는 아울러 보상체계 합리화를 위해 보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보상위원회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연차보상평가를 실시하고, 성과보상이 재무상황 및 리스크와 연계되도록 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상의 상당부분은 변동보상으로 지급하되, 최소 3년 이상 이연지급한다.

금융위는 아울러 일반 직원에 대한 보상도 성과주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국장은 "은행 이익 감소시에도 인건비가 유지되면서 인건비율(인건비/총이익)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일반직원도 성과보상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24.7%였던 은행 인건비율은 매년 올라 올해 상반기 33.5%를 기록했다.

◆연차보고서에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금융위는 금융사 연차보고서에 지배구조 공시를 의무화했다. 신 위원장은 "지배구조 공시로 시장과 주주의 감시를 강화하면,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배구조 공시에서 사외이사와 CEO후보는 약력이 아닌 구체적인 ''경력''을 공시해야 한다. 또한 CEO승계 프로그램과 임직원 보상체계도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김 국장은 "총발행 주식 수, 의결권행사 주식 수, 안건별 찬성 및 반대비율을 연차보고서를 통해 공시함으로써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만들어진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원칙적으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금융회사에 적용된다. 다만 자산운용사는 자산 규모가 2조원 미만이더라도 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일 경우 적용 대상이 된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은 근거법을 우선 적용한다.

신 위원장은 "연차보고서 공시와 관련해 ''원칙준수 및 예외공시'' 원칙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칙이 도입되면, 모범규준을 이행하지 못하는 금융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금융위는 이날 발표한 모범규준에 전문가 및 금융권의 의견을 수렴, 최종 확정안을 만들어 다음달 10일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연차보고서 서식은 다음달 중으로 마련돼 내년 2월부터 금융기관 공시가 시작된다. 또 내년 2분기부터 기업지배구조원, 금융연구원 등의 외부평가를  실시한다.

금융위는 각 금융사의 모범규준 이행 실태를 점검한 뒤 필요할 경우 시정을 권고할 방침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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