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갈등에 골병 드는 KB

1위 은행의 위상은 어디로?…영업력 타격 '심각'
이건호 행장 지주 임직원 2명 고발…지주-은행 갈등 또 타오르나?
"'관치 낙하산'이 KB 망쳤다"

한 때 압도적인 국내 1위 은행이었던 KB국민은행을 포함해 승승장구하던 KB금융그룹이 계속된 내부갈등으로 망가지고 있다.

이미 상반기 내내 대립과 갈등으로 그룹이 얼룩진 탓에 국민은행의 영업력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건만, 겨우 금융감독원의 제재가 끝나고 추스르려는 순간 이번에는 소송전이 불을 뿜으면서 새로운 내부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금융산업노조 등에서는 “관치금융이 KB금융을 망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처받은 영업력…KB의 초라한 성적표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반기 내내 지주와 은행 간 갈등이 불거지고, 그에 따른 금감원 조사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모두 중징계 대상에 오르는 등 경영공백 사태까지 야기되면서 국민은행의 영업력과 KB지주 실적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반기 동안 국민은행의 예수부채는 200조9680억원에서 205조3240억원으로, 대출채권은 203조1240억원에서 205조4620억원으로 각각 2.2% 및 1.2%씩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타 은행에 비해 몹시 초라한 성적표다. KB.신한.우리.하나.외환.NH.기업은행 등 주요 7개 은행 가운데 예수부채 증가율이 국민은행보다 낮은 곳은 한 곳도 없다. 대출채권 부분에서도 우리은행(0.6%) 다음으로 국민은행이 낮았다.

예수부채와 대출채권 증가율 1위 외환은행이 각각 7.5% 및 6.9%씩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다.

국민은행 직원 A씨는 “경영진이 서로 싸우고, 그 와중에 경영공백까지 생겼으니 영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내부갈등이 빨리 해소되지 않으면, 하반기까지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KB지주는 상반기에 연결 당기순이익 7652억원을 시현, 전년동기 대비 33.1% 증가했다. 지난해보다는 크게 나아진 모습이지만, 신한.우리.KB.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사이에서 비교해보면 3등에 불과하다.

신한금융지주는 상반기 당기순익 1조1360억원을 기록, KB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은행 부문에서도 국민은행은 3446억원을 버는데 그쳐 신한은행(8419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우리금융지주 역시 조세특례법 개정의 혜택 등으로 상반기에만 1조1931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KB지주 아래에는 하나금융지주(6101억원)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여전히 고객 수로는 1등이지만, 수익성과 경영의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이미 신한은행에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며 “지주사로는 신한지주와 KB지주의 차이가 더욱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할 경우 새로운 ‘통합 은행’까지 국민은행을 앞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때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던 국민은행이 후발주자들에게 점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관치 낙하산’에 망가져 가는 KB”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KB금융그룹 내 갈등은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금감원 제재 수위가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경징계로 결론나면서 다행히 경영공백 상태는 피했지만, 이번에는 이 행장이 칼을 뽑아들었다.

국민은행은 지난 26일 김재열 KB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 문윤호 KB지주 IT기획부장, 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3명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은행은 고발장에서 “유닉스 시스템이 성능 시험에서 1700회나 시스템이 다운되는 등 명백히 성능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여러 가지 환경을 조작하고 시스템이 다운될 사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 행장은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전산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국가 경제에 혼란이 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면서 “잠재적인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명백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이는 3개월 감봉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 사법당국의 판단을 받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고발에 앞서 이 행장은 조 본부장을 해임 조치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이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같던 인물들을 쳐내려는 것 같다”는 관점이 유력하다.

상기 3명의 임직원은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이 행장과 대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 행장에게 징계 수위를 낮춘 반면 김 CIO, 문 부장, 조 본부장 등에게 중징계를 가한 것은 사실상 금융당국이 이 행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힘을 받은 이 행장이 자신에게 반기를 든 인물들을 단죄하려는 듯 하다”고 추측했다.

특히 똑같이 중징계를 받은 정윤식 상무는 고발당하지 않았으며, 전략본부장 자리에 유임됐다. 때문에 “고발 대상은 금융당국의 중징계 여부가 아니라 이 행장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는 사람보다 사안의 문제”라면서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만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발 대상 중 지주사 임직원이 2명이나 포함된 탓에 지주와 은행 간 갈등이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이 행장은 “임 회장과 갈등은 전혀 없다. 세 임원은 금감원 조사에서 위법행위가 발견됐으므로 그에 맞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일 뿐”이라며 ‘갈등설’을 일축했지만, 국민은행과 KB지주의 직원들은 불안감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민은행 직원 B씨는 “이제는 정말 그만 싸우고 영업에만 집중했으면 한다”며 “경영진의 다툼이 거듭될수록 현장이 받는 상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갈등의 불꽃은 노사간으로도 번지고 있다. 

성낙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임 회장과 이 행장 등 ‘관치 낙하산’들이 KB금융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이번의 석연찮은 경징계는 KB금융의 갈등을 증폭시켜 대한민국의 금융산업 전체를 더욱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하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 회장과 이 행장뿐 아니라 최수현 금감원장까지 모두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상위기관인 금융노조는 똑같이 3명의 사퇴를 요구했으며, 오는 9월 3일의 총파업에서도 ‘관치금융 철폐’가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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